미술사에서 특별관 ‘관계’를 맺었던 화가들의 조합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천재성을 발휘했고,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펼쳐나갔다.
그런데 서배스천 스미가 포착하고 있는 네 조합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가 아니라는 데 의미가 있고, 매혹적이다. 우리말로 ‘관계’라 했고, 원제는 ‘라이벌(rivalry)’라고 했지만, 각각의 조합은 친밀함만 보이는 관계도 아니었고, 단순한 라이벌의 관계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 들어가기도 했지만 상대의 성공에 질투하기도 했으며,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네는 자신과 아내 수잔을 그린 드가의 그림을 난도질해버렸으며, 마티스는 피카소의 성공에 당혹감을 느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상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대에게서 영향이든 질투를 받거나 느끼지 못했다면 그들의 예술 세계는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어쩌면 그들의 예술 세계는 자신의 감성에서 비롯된 세계에 대한 해석이므로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영향이라는 것 역시 그저 영향일 뿐 작가의 위대함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의 발전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할 대로 충만한 화가가 또 다른 특출난 화가를 만나고 그의 예술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데 크나큰 자극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마티스와 피카소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 미술과 조각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그저 우연일 뿐일까? 마티스가 주장했듯 피카소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져갔다는 게 사실이든 아니든 둘은 새로운 미술 사조를 여는 데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또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했다.
나는 물론 여기의 여덟 화가 모두의 삶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지만, 특히 드쿠닝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윌렘 드쿠닝은 폴록과 현대 미국 미술 최고 화가(‘최고 화가’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를 두고 경쟁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잭슨 폴록보다 먼저 주목받았지만, 금방 최고의 자리를 폴록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화가였고, 그 때문에 괴로워했다. 폴록의 사후 신비화된 폴록 때문에 최고의 자리를 넘겨받지 못했던 드쿠닝은 폴록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동경심, 경쟁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폴록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던 드쿠닝을 보면, 폴록의 사후 오히려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드쿠닝을 보면 예술가의 관계가 복잡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와 베이컨의 경우도 사실은 낯설다(루치안 프로이트는 우리가 잘 아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고, 프랜시스 베이컨도 우리가 잘 아는 그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다). 이들이 현대 미술에서 상당히 유명한 화가라는 것은 지나가다 엿들은 바가 있지만, 그들이 어떤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전혀 몰랐다. 당연히 둘의 관계는 더더욱. 책을 쓴 서배스천 스미는 프로이트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고, 또 그에 관해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쓴 바가 있어서 그런지, 이 관계를 다루지 않았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프로이트가 베이컨이 아닌 다른 누구와, 베이컨이 프로이트가 아닌 다른 누구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둘의 관게를 보면 역시 파괴적이면서도 서로를 동경하는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서 의아스러우면서도 공감갈 수 밖에 없다. 전시회 도중 감쪽같이 사라진 프로이트의 베이컨 초상화 자체와 사연은 둘의 관계를 더욱 신비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하긴 어떤 관계든 그런 신비화가 없으면 심심해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폴록과 드쿠닝이 그리니치빌리지의 술집 시다 태번에서 나눴다고 하는 대화, 마티스와 피카소 사이의 그림 교환에 얽힌 사연, 마네가 드가의 그림을 난도질해버린 사건 등이 그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관심 갖게 만드는 셈이다.
서배스천 스미는 화가들의 ‘비공식적’ 관계가 가지는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그건 그저 화가들의 숨은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예술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관계를 끄집어낸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