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는 축복인가?

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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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 내 친구들 중에도 금방 몇을 꼽을 수 있을 정도니 상당한 수의 과학자가 노화를 연구하고 있을 터이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의 노화를 늦추고, 나아가 영원한 삶을 사는 것? 궁극적인 목표가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지만, 그래도 좀 더 오래, 좀 더 건강하게, 좀 더 젊게 사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데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만큼 불로장생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자, 아주 근본적인 욕망이다. 소설을 읽으며 과학, 그것도 동료 과학자를 생각하기는 참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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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은 그 인류의 오랜 소망과 근본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소망과 욕망이 실현된 사회는 어떻게 될까? 영원한 삶, 영원한 젊음을 얻은 사람들은 행복할까? 죽지 않는, 늙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영원히 번성할까? 야마다 무네키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분명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 상당히 놀랍다. 여행비둘기 중 돌연변이체로부터 불로화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인간에게 감염시켰다는 것이 그렇다. 이걸 놀랍다고 한 건, 이게 지금까지의 노화 연구의 맥락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노화 연구는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뛰어넘어 조류의 바이러스가 어떤 메커니즘인지는 모르지만 바로 노화를 멈추게 하고 영원한 삶을 준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수많은 노화과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현재의 과학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은 건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렇게 얻은 젊음, 영생은 어떠한가? 모두가 그렇게 되면 사회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사람들만 살아가게 된다. 아마 자식을 낳는 것도 매우 줄어들 것이다. 사회의 유동성은 점차 감소할 것이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말 것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생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고 세대의 교체를 유도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이 조치는, 또 당연하게 인간의 욕망을 거스른다. 시간이 되어(아무리 100년이 지났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로화 시술을 받고자 한 욕망과 완전히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법을 어기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런 조치를 없앨 수 있을까? 아니 불로화 자체를 폐기시켜버릴 수 있을까? 이미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로화의 혜택(?)을 기다리고 있던 어린 사람들(소설에서는 20세가 되면 받을 수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은 어떻게 되는가?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 곤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지점이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사회가 그대로 파멸되는 것을 그릴 수도 있다(어차피 소설이니 그렇게 경고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너무 만화 같은가?). 그러나 작가는 문제의 해결책을 문제 자체에 숨겨놓고 있었다. 바로 불로화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도록 말이다. 사실 애당초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접종하여 유전체에 삽입되도록 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없는지를 아주 정밀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지금의 과학과 의학의 윤리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젊음과 영생에 대한 기대에 들떠 그것들을 대충 무시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필연적인 불치의 암이었다(암이라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지 않아 실망했고, 그래도 여러 장기에 한꺼번에 발생하는 암이라는 점에서는 그래도 신경썼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회는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불로장생은 여전히 일장춘몽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15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꿈’이라 치부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영원한 젊음, 영원한 삶이 결코 모든 사람이 누려서는 안되는 욕망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수많은 과학자들이 덤벼들고 있는 노화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정말 과학자들이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고, 나아가 노화를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정말 바이러스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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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몇 년 전 중국의 한 과학자가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를 이용하여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켰다는 뉴스가 기억난다. 그 과학자는 결국 퇴출되었다. 현재의 기술로 가능한 모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그 이야기를 150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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