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생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아르망 마리 르로이,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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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아리스토텔레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어다. 온갖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썼고, 그래서 현대의 온갖 분야의 책에 서두를 장식하는 인물. 세상의 모든 학문이 그에게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급된다.


그럼에도 과학자, 더 좁혀 생물학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사를 다룬 책의 서두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장식하고 있지만, 그의 근대 이후의 과학에 대한 영향은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 과학이란 엄밀한 측정과 실험에 기초한 것이라야 인정받고 있기에 단순한 관찰과 편견에 사로잡힌 인식(이를테면 여성에 대한 인식)은 그를 과학자, 내지는 생물학자로 인정하기에 꺼려진다. 그래서 그가 제대로 기술했던 부분보다는 잘못 기술한 부분을 강조하여 어쩌면 그 이후에 발전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과학사의 서두에 그를 언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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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마리 르로이는 그런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공(功)과 과(課)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과학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현대 과학에 비추어 봤을 때 그가 그릇된 방법론에 기초하기도 했으며, 분명히 잘못 인식한 부분도 있지만, 단지 그런 오류가 시대적 한계라고 치부해버리고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을 극복하려 했고, 그가 현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당대에 가장 뛰어난, 아니 그 이후 최소 2000년 가량 가장 뛰어난 과학자, 생물학자였다는 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라군(lagoon)’은 ‘석호(潟湖)’란 뜻으로 삼각주, 사주 등에 의해 먼바다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그리스의 작은 섬 레스보스의 라군을 지칭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생물학자로서 태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레스보스 섬이라... 익숙한 이름이다. 바로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의 섬이며,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레즈비언의 어원이 된 섬이다(책에서 사포는 한두 차례 등장하나 레즈비언 같은 말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중반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플라톤이 세운 아테네의 리케이온에서 물러나 레스보스 섬에 몇 년 간 머문다. 이곳에서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어부들로부터 전해 들으며 생물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몇 종의 책이 되었고, 그중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르로이는 현재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레스보스 섬을 교차시키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연구를 되짚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가 과학을 실제적으로 발명했고, 오랫동안 지속된, 그리고 현재까지도 (일부) 지속되는 자연에 대한 사고 체계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단순한 추측에 의한 주장을 거부하고 관찰에 근거한 주장을 최초로 시도한 과학자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윈 급의 과학 시조로 올리려 시도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방면에서의 활약을 보면, 그가 생물학 분야에서도 이렇게 깊은 연구를 수행하고 책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의 생물학은 지금과 같은 독립된 학문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가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려는 사람이라고 여겼다면, 바로 생명체에 대한 깊은 이해야말로 세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생물학은 현대 생물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훌륭하다고 할 수 없을진 몰라도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비판하는 이를 비판하기 위해 현대 과학 방법론도 그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서술은 조금 반감이 들기는 한다. 특히 그의 목적론이 현대 진화론도 거의 비슷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분석은 다소 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의 작용인(운동인)을 오늘날의 발생생물학과 신경생물학으로, 질료인은 현대의 생화학과 생리학으로, 형상인은 오늘날의 유전학으로, 목적인은 진화생물학과 연관 짓는 것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철학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자칫 그의 과학이 정말 현대 과학의 발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를 주기도 한다(실제 르로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래도 르로이는 방대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통해 일관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자로서의 자격을 복권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일단은 읽는 재미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렇게 가까이 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생물에 대한 정확한 서술도 의미가 있지만 생물에 대한 오해마저도 대체로 그 이유가 있기에 우리 사고의 보편적 단점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과학자나 과학자를 지향하는 이들은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르로이의 작업은 잊혀진 과학자, 생물학자를 되살려냈다. 그저 과학자 한 명을 복권한 게 아니라 현대의 과학을 유구한 전통을 지닌 생각의 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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