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소설의 대가라는 존 르 카레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었다. 이 소설이 존 르 카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 영국 기관에서 첩보 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첩보소설(많이 읽지는 못했지만)과는 다른 점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우선은 첩보원들의 생활에 대한 디테일이다. 그들은 그저 첩보 활동에만 매진하는 이들이 아니다. 가정이 있고, 취미 생활이 있다. 그리고 첩보기관 내에서의 알력이 있다. 개인적인 고민과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 그 가운데 직업으로서 첩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전트 러너』의 주인공은 마흔 후반의 노련한 비밀요원이다. 유럽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여러 작전을 성공하기도 했고, 또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던 그는 은퇴 직전에 있다(나이가 들어서도 액션을 마다 않는 007을 상상하면 안 된다). 새로이 맡은 조직은 거의 버려진 조직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고 수행하려 한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게 된 청년과 조직의 후배와 얽히게 된다. 조국을 배신하려고 하지만(더 큰 명분으로는 유럽의 재건이지만) 배드민턴으로 우정을 쌓은 청년을 위해 그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지극히 첩보요원다운 방식으로.
하지만 이 소설에서 존 르 카레가 그런 스토리에 큰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반전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릎을 치게 하는 순간을 만들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존 르 카레는 영국과 유럽, 미국의 정치 상황을 비꼬고 있다. 브렉시트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고, 그것을 트럼프와 푸틴의 반(反)민주주의적 행태에 대해 조롱하고 있다. 냉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그 사고에 젖어 있는 ‘기관’의 구태의연한 행태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이것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드러나지만, 그게 소설가 자신의 고뇌라는 것을 모를 수 없다.
우리말 제목이 ‘에이전트 러너(agent runner)’다. 번역하면서 ‘비밀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을 포섭해 관계를 유지하고 비밀 확보를 위해 지시와 지원을 하는 고급 요원’이라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 내트가 그런 사람이다. 원제는 ‘Agent Running in The Field’다. 굳이 해석하자면, ‘현장에서 뛰는 요원’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현장에 뛰어들어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첩보요원을 의미하고 있다. 이 역시 주인공 내트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냥 ‘에이전트 러너’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