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영화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사람마다 영화에서 특별한 것을 읽기도 한다. 가령 유전역학자 설재웅 교수는 영화에서 유전학을 끄집어 낸다. <아일랜드>에서 인간유전체사업을,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유전자 암호 해독방법을, <살인의 추억>에서는 유전자형과 표현형의 관계를 읽어 낸다.
영화가 사람과 사회를 보여주고 발언하는 것이니 소재에서부터 생명체의 기본인 유전학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질병을 다루는 영화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위대한 쇼맨>의 신체 이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 <미라클 벨리에>의 청각장애, <미드나잇 선>의 색소성건피증(햇빛 노출되면 몸에 이상이 생김), <원더>의 일그러진 외모를 가진 소년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 질병들은 모두 유전자의 이상이 원인인 질병들이고, 유전학을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질병들이다.
또한 영화는 유전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아이 필 프리티>는 운동으로 선천적 비만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유전학자는 <우리 형>과 같은 영화를 통해 구개열과 같은 장애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임산부의 영양(특히 엽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에이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성애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설재웅의 『유전자를 알면 장수한다』는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초적인 유전학적 지식에서 대학 이후에야 나오는 고급 유전학(이를테면 후성유전학이나 각인 같은 것들)을 영화에서 소재를 찾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영화는 유전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유전학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이든, 잘 모르는, 혹은 어렵게만 여겨지는 유전학이 친근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몇몇 부분은 나의 관점과는 다른 데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무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반대라든가, 동성애에 대한 시각(무척 조심스럽긴 하다)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프랜시스 콜린스를 너무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신앙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하지만 이 역시 지나친 편견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입장으로 보이고,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보고 기술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이 늘었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아졌다. 영화를 보면서 유전학만 떠올릴 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