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마샬, 『장벽의 시대』
코로나 19로 세계가 벽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읽는 느낌은 새삼스럽다.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은유가 무색할 정도로 하나가 되어가는 추세를 거스를 수가 없다고 여겼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된 이유가 바로 전염병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이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나라들이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
팀 마샬이 장벽의 예로 든 곳들과 그 장벽이 구분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상징하는 바깥 세계에 대한 방화벽과 티베트와 같은 곳의 독립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
미국의 트럼프가 공언한 멕시코와의 국경에 세워지는 장벽과 미국 내부의 인종 차별과 분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한, 혹은 더 부채질하는 장벽과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많은 중동 국가들에서 마주치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오래된 적대 관계.
인도와 그 주변 국가들(대표적으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이의 국경 분쟁과 이주민을 둘러싼 문제들.
식민지 시대에 유럽 강대국들이 아무런 민족적, 자연적 고려 없이 그려낸 국경으로 말미암은 아프리카의 갈등.
독일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여전한 통합 세력과 분리 세력 사이의 반목과 이주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고민하는 유럽.
그리고 브렉시트로 불거진 영국 내부의 분열과 북아일랜드 문제.
이렇게 보면 전 세계에 장벽이 세워지지 않는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원인을 보면 매우 다양해 보이지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현대의 장벽이 세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간의 빈부 차이로 인한 이주민 문제, 국경과 일치하지 않는 부족 분포, 혹은 종교 분포에 관련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전문가가 아니면, 아니 전문가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는 애기다. 오히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남북한 사이 장벽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념의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보면 매우 사소해보이고, 드문 케이스로 보일 정도다(팀 마샬은 마지막 장에서 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다섯 명의 선수가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상황은 옳은 것일까? 당연히 옳다고 할 수 없다. 크든 작든 집단으로 나눠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적대시하는 상황은 갈등을 초래하고, 필요 없는 비용과 수많은 목숨까지도 낭비되고 있다. 이는 에이미 추아가 『정치적 부족주의』의 문제의식과 아주 흡사하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에이미 추아가 역사적인 상황을 통해 집단이 부족의식에 근거하여 분열하고, 현대의 미국에 적용했다면, 영국의 기자 출신 지리학자 팀 마샬은 세계 각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취재하고, 그것을 영국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둘 다 큰 규모든 작은 규모든 서로가 서로를 구분짓고 배격하며, 벽을 쌓는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바뀔 수 있을까? 팀 마샬은 분명하게 답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 상황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러저러한 대책을 대놓고 있지만, ‘세계를 어디서나(anywhere) 보는 사람’보다 ‘세계를 어딘가에서(somewhere) 보는 사람’이 세계 어디에나 훨씬 많으며,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위를 하고, 투표를 하는 것을 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런 책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므로 계속해서 인지하고,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기에.
그건 그렇고. 당장에 이 전염병이 잦아들어야 그나마 한 겹의 장벽이 걷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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