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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자아라는 환상

톰 올리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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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살고 있는 세균은 약 38개 조개로 추산된다. 이 세균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에 따라 비만이 되기도 하고, 면역력이 저하되기도 하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 몸 속의 마이크로바이옴과 긴밀한 상호의존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가 쓰는 연필 한 자루에는 수천 명의 지식과 노동이 담겨 있다. 목재를 키우고 자르고, 이동시켜야 하며, 철광석을 채굴하고, 철로 제련해야 한다. 흑연 채굴은 어느 한 대륙에 국한된 활동이 아니다. 연필을 다 만들고도 연필 표면의 라커 칠을 하는 데도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들어 있다.


우리의 기억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다. 흰색 차가 아예 없었음에도 “흰색 차가 빨간 불에 주행했나요?”와 같은 유도성 질문에 우리는 쉽게 넘어가서 자신의 기억에 통합시킨다. 내 과거에 전혀 없었던 일인데도 가짜 사진을 보여주면 나는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지어낼 수 있다. 우리의 개별적인 자아는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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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올리버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근의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개별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다. 이러한 자각은 서구와 현대의 개인주의는 지구를 파괴하는 촉진제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제목을 봤을 때는 바라바시 등의 ‘네트워크 과학’을 떠올렸다. 그리고 당연히 연결되어 있지! 그런 생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자연과 자연 사이의 연결, 사람과 자연 사이의 연결.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상식 아닌가? 그런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훨씬 깊고, 근본적인 내용이다. 또한 과격한 부분도 있다(원제 “자아라는 환상(The Self Delution)” 자체가 그렇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런 과학적인 증거 자체에 대한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톰 올리버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자각과 각성이다. 그것을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천이란, 이를테면 닭 한 마리당 A4 용지 한 장도 되지 않는 면적에서 키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구입하고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성을 포함하며, 그것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길어진 연결성에 무감해지지 않고, 세계의 모순과 잘못이 나에게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고 무언가를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 있던 것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힘든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 결심하고 실제 하는 것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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