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마샬의 『지리의 힘』 첫 번째 권에서는 지역을 크게 두고 보았다. 서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북아(한국과 일본) 등으로 권역 차원에서 지리적 조건이 역사와 현재의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보았다. 중국과 미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적 단위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세계 정세 차원에서 그 나라들을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단일한 국가 차원에서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반해 두 번째 권에서는 단일한 국가에 좀 더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의 사헬이라고 하는 광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고, 우주라는 더 광대한 영역을 포함시키고 있긴 하지만, 주축은 개별 국가다. 그 개별 국가들을 보면 지정학적으로 분명 무언가가 불안한 나라가 있다. 이란이 그렇고, 터키가 그런 나라다. 그런데 나머지 나라들을 보면 전혀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나라이자 대륙 자체가 한 나라이면서 한 없이 영화스러울 것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중동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 석유를 팔아 국민들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우디아라비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일구었던 영국,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자, 관광으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 그리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있는 스페인. 이런 나라가 지정학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팀 마샬이 속속들이 그 나라들이 처해 있는 지리 조건과 역사적 전개를 꼼꼼히 따라가보지 않더라도, 앞에서 소개한 그 나라에 대한 수식어 자체가 그 나라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자체가 그 나라의 분열을 말해주고 있다. 더듬어 기억해보면 불과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가 독립을 위한 투표를 실시해서 통과시키고 스페인 정부를 강제로 독립을 저지시킨 바가 있다. 또한 영국은 어떤가? 브렉시트라고 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 또 잘 이해가 안되는 결정을 내린 나라가 아닌가? 그만큼 그 나라는 유럽 대륙과는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물론 지리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브렉시트 투표에서 스코틀랜드는 전혀 다른 투표 성향을 보였듯이 국가 내의 통합이 여전히 불안 요소인 나라이기도 하다.
팀 마샬은 이러한 나라들이 성립해 온 역사를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 나라 자체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 강대국과의 관련성을 바탕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읽다보면 이 지구가 매우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 현재도 어디선가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충돌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과의 관계 정립에 매우 난감해하고 있으며(그 여파가 작년 말 요소수 품귀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우리가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말해준다), 이란은 말할 것도 없이 주변의 국가와,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끊임없는 신경전과 실질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리스와 터키는 지금도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 있다. 이 그리스와 터키의 대치는 우리가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지도에서 에게 해의 섬들이 터키와 인접해 있는데도 그리스 영토라는 것을 보면, 이 두 나라의 관계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거기에 잘 알지 못하는 지역인 사헬과 에티오피아와 같은 지역, 나라에 대한 장은 우리의 지리적 인식을 넓혀 주기도 한다. 얼마나 우리가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해서 무심한지를 알 수 있기도 하며, 그 지역의 다툼이 또 얼마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있다.
끝으로 팀 마샬은 ‘우주’를 하나의 장으로 떼어 내고 있다. 1권에서는 ‘북극’을 이런 식으로 다뤘는데, 어느 국가의 영토도 아니지만 많은 국가가 뛰어들고 있는 지역이라는 개념으로 둘은 비슷하다. 가끔 뉴스에서 보도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우주’ 영토를 둘러싼 열강들의 진격이 별로 멀지 않는 미래에 각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팀 마샬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의 말석이라도 차지하고자 애를 쓰는 우리나라도 볼 수 있다.
21세기의 국가와 지역을 다루고 있지만, 그 국가와 지역의 이야기는 대륙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이래의 지리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고 있다. 국가와 국가를 가로막은 산맥, 대륙과 대륙을 잇는 좁은 해협, 국가와 국가를 이으며 흘러가는 강 등등. 그런데 그것만이라면, 즉 지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기만 한다면 사실 이런 책은 필요 없다. 그렇게 흘러갈 뿐이니까 말이다. 지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는 분명 중간의 사람의 역할이 있다. 지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며, 그것을 극복하고 국가의 통합을 이뤄내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지리의 힘’이지만, 결국은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리라는 운명에 굴복하거나 극복하는 인류’이다. 어떤 쪽에 설 것인지는 하기에 달린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