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겨울올림픽이 개최되기 1, 2년 전 쯤에 우연히 평창의 스키점프대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이 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앞에 서기 위해서 다가가는 것도 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는데(눈이 쌓일까봐 밑이 숭숭 뚫려 있는 철망으로 되어 있다), 출발하는 지점 가까이 가 아래를 쳐다보니 이걸 누가 해낼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선수들은 그 높이에서 거의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스키를 타고 내려가다 하늘을 향해 도약한다. 어쩌면 무모함의 매력이랄까?
『조인계획』은 바로 그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서지를 보니 1989년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가로서의 이력을 쌓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때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동계 스포츠, 특히 스키 매니아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두 가지 경력이 잘 섞여 있는 셈이다. 스키점프를 소재로 다룰 수 있는 소설가도 드물었을 것이고(지금도?), 스키 점프의 메카닉을 공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소설가는 더더욱 드물었을 것이다(당연히 지금도). 기계를 통한 운동 능력의 극대화에 관해서 다른 소설가도 쓸 수는 있겠지만, 그처럼 기계에 대해 자세히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딱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천재 선수가 있다. 다른 선수들이 시기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이고, 자신의 재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은퇴를 앞둔 어떤 선수는 그 선수의 모든 것을 흉내내어 다시 한번 불꽃을 피워보고 싶어하고, 어떤 감독과 선수는 약물과 기계를 통해서라도 천재의 모든 것을 흡수해내고 그 자리에 올라서고 싶어한다. 욕망이다. 소설에서 욕망은 늘 비극으로 끝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의 1/4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다. 이런 설정은 결국 그가 범인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는 사정이 있다는 얘기다. 소설은 바로 그 사정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된다. 이 소설에서 그 수수께끼는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다뤄진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시점이 있고, 범인(으로 공개된 인물)의 시점이 있고, 동료 선수의 시점이 있고, 또 연인의 시점이 있다. 그 시점들은 서로 엇갈리지만 결국은 하나로 접근하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구조를 이룬다.
사건의 전모가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범인은 범인이지만, 또 범인이 아니다. 후에 쓴 『용의자 X의 헌신』을 연상케 하지만 아직 그 만큼의 스킬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