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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

신병주, 『우리 역사 속 전염병』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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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도 당연히 전염병이 있었다.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왕조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신병주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우리 역사의 기록 속에서 전염병을 찾아내 어떤 양상으로 전파되고, 그에 대한 대책은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COVID-19이 계기가 된 책임에 분명하다. 그것 자체가 어떤 흠이 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과거에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의 덕목에는 그러한 것이 있으니까. 얼마나 그 작업을 충실히 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이 책 속의 ‘우리 역사’는 주로(전부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다. 그리고 전염병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녀들의 활동이나, 허준의 『동의보감』, 정약용의 『마과회통』,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지석영 등에 대한 얘기들은 넓게 보면 전염병에 관한 얘기이긴 하지만 조금은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제한되어 포함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구체저인 전염병에 대한 얘기 전에 이 얘기들부터 있어서 조금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 책이 원래 의도했던 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7부부터 10부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구분하기 힘들었던 홍역과 천연두가 우리 역사, 특히 왕실과 민간에 어떤 상처를 냈는지를 역사 속의 기록을 찾아내고 있고, 19세기 조선을 휩쓸었던 콜레라와 온역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중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왕실에서 이런 전염병들로 꽤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민간에서의 희생이 더 컸겠지만(민간의 희생은 단순한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왕실의 희생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것은 전염병의 정체에 대한 이해 결여(그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신에 의존한 대처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왕실이 어떤 이가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 격리 조치 등이 이뤄지곤 했지만 그것 역시 철저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병자호란의 강화가 천연두 때문에 일찍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화파의 득세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에 들끓던 천연두에 대한 위협 때문에 우리 정부도 굉장히 곤란했고, 홍타이지도 섣불리 조선 땅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서둘러 강화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석영 전에 정약용이 먼저 우두법을 제안했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정약용이 보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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