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외국어 전파담』
저자 이름이 로버트 파우저라, 옮긴이 이름을 찾았다. 없다. 저자 소개와 <책을 펴내며>를 읽으니, 이 양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썼다는 걸 알 수 있다(<책을 펴내며>는 영어, 일본어도 함께 있다). 편집부의 도움을 받았겠지만(이도 편견인가?) 언어에 대한 책을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한국어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이 가지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곳에서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로서 살아온 저자는 외국어가 지역과 국경을 넘어다니는 현상을 세세하게 분석했다. 마치 자신이 여러 언어를 배우고 익혀온 과정을 복기하듯이. 물론 그가 새로운 언어(여기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도 포함된다)를 배워온 과정은 자기 자신의 선택이었고,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가 전파되는 과정은 그런 스스로의 선택과는 다른 과정이이었지만 말이다.
외국어를 배우고, 전파되는 과정이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얘기는, 저자가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 즉 “외국어는 개인의 호기심과 필요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전파의 과정은 시대에 의해 좌우되며 역사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과거든 현재든 어떤 개인이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 결심은 개인적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역사상 외국어는 강요되어 왔으며, 개인의 결정도 실은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저자는 자신이 쓰는 언어가 아닌 언어를 외국어로 인식하고, 그 언어가 전파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개괄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도래와 함께 문화 이식의 첨병으로써 언어가 강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세계는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그 시기 언어가 단순히 의사 소통의 도구를 넘어서서 어떻게 해서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 되고, 따라서 국가의 통합을 위한 도구, 국가의 힘을 표상하고, 강제하는 도구가 되어가는지, 역시 다양한 국가와 언어를 예로 들어가며 보여주고 있다.
학습 방법의 변천사는 조금 지루하지만, 외국어 학습의 지난한 과정, 그럼에도 아직도 서툴고, 혹은 그만두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외국어 학습에 왕도가 있다면, 이렇게 다양한 학습 방법이 제안되고 시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현재다. 현재 외국어 학습의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규정짓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라는 점이다. 영어를 아는 것은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좀더 자유로이 구사하고, 외국인과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뛰어넘는다.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결정하는 국가의 언어, 역사상 최초로 세계 공용어의 위치에 오른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계급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저자는 영어가 이미 국제공통어의 권위를 획득했고, 따라서 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도 흐릿해졌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더라도 영어 패권의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만큼은 여전하다고 본다. 저자 역시 그걸 부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영어를 모어로 하는 이인만큼 그에 대한 인식은 영어를 부단히 배워 익혀야만 조금 할 줄 알게 되는 사람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그 이유들을 모두 포괄하는 이유는 있다. 그 언어를 배움으로써 얻어지는 게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배워지는 모어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명시적으로 얻어지는 이득 없이 취미로 영어를, 일본어를, 중국어를 배운다는 이가 있겠지만, 거기서도 그 언어를 배움으로써 무언가(이를테면 자신의 만족감?)를 얻는다. 더욱이 그런 취미보다는 취업을 위하여, 학문을 위하여, 혹은 학교에서의 점수를 위하여 등등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그렇게 외국어를 사회가 받아들이게 된 역사와 과정, 이유를 꼬치꼬치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멈춰서서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이 언어에 목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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