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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넬라 (Legionella) 2

1976년, 필라델피아

by ENA

사실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egionella pneumophila)라는 학명에는 사람 이름이 없다. 세균 학명 속에서 사람 이름을 찾는 이 작업에 이 세균을 포함시킨 이유는 이 세균을 찾아내기 위한 드라마와도 같은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이 속(genus)에 속하는 다른 세균 이름에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선 레지오넬라 뉴모필라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자.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세균에 관한 이야기는 1976년 필라델피아의 벨뷰 스트래퍼드 호텔라는 유서 깊은 호텔에서 시작된다. 이 해는 필라델피아에서 이뤄진 미국 독립 선언 200주년이었으니 재향군인회 행사는 더욱 성대하게 열렸다. 7월 21일 재향군인회 회원 2,300명을 비롯해서 약 4,500명 정도가 이 호텔에서 열리는 3일간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기온이 32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참석자들은 호텔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즐겼고, 다들 만족하며 돌아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재향군인회 행사에 참석한 후 돌아간 회원들이 폐렴을 앓고, 심지어 죽었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재향군인회 회원들은 대체로 노년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골초도 많았고, 각종 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 몇 명이 사망한다고 그게 큰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3명 사망, 6명 입원 치료 중”, 이런 상황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재향군인회 참석자 중에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는 병원에서도 환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여러 의사들고 지역의 보건 당국이 이 상황을 인지하게 시작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질병통제센터(CDC)에도 보고가 올라갔다.


CDC의 담당자는 처음에는 이 보고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노인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행사에서 몇 명 정도는 폐렴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재향군인회라는 특성상 참가자들 대부분이 나이가 있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로부터 보고는 계속 올라왔고, 금세 폐렴 사망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뭔가 상황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우려했던 건 돼지 독감이었기에 처음에는 돼지 독감을 의심했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분명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CDC는 담당자로 서른 두 살의 데이비드 프레이저(David Fraser)를 지목하고 필라델피아로 파견했다(프레이저는 나중에 CDC 수장이 된다. 그의 이름은 L. pneumonphila의 아종(subspecies) 하나에 남았다. L. pneumophila subspeceis fraseri).


프레이저는 환자의 검체와 혈청을 조사한 결과 폐렴의 원인이 돼지 독감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확인했다. 바이러스는 아니었다. 몇 가지 세균 후보를 올려놓았다. 앵무병을 일으키는 앵무병 클라미디아(Chalmydia psittaci), 동물의 Q열의 원인이 되고 사람에게는 폐렴을 일으키는 Q열균(Coxiella burnetii), 곰팡이 종류로 새나 박쥐를 통해 전염되는 히스토플라즈마(Histoplasma)도 후보 병원체로 올려졌다. 그러나 어느 것도 아니었다. 병원체의 정체를 밝히는 와중에도 환자는 늘었다. 8월 첫 주가 되면서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전염성이 거의 없었고, 2차 감염도 없었다. 그래서 재향군인회가 열리고 몇 주가 지나면서 환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182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29명이 사망한 걸로 나타나 치명률이 16%에 이르렀다. 재향군인회 회원이 아닌 경우도 발병한 경우도 나타났다. 호텔의 냉방장치 수리기사, 버스 운전사, 호텔 현관 쪽 행인도 폐렴에 걸렸다. 희한하게도 호텔 직원 중에는 아무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호텔 직원들은 이전에 레지오넬라균에 노출되면서 면역력이 생긴 상태였다.


드디어 1977년 1월에 이르러 조셉 맥데이드(Joseph McDade)를 비롯한 CDC의 과학자들은 폐렴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분리해냈고, 이것이 호텔의 냉각탑에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Legionella micdadei란 세균 학명이 조셉 맥데이드 이름에서 온 것이다). 세균이 냉각 시스템을 통해서 전파되었던 것이다. 조사 결과 이미 벨뷰 호텔에서 2년 전 열렸던 다른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도 발열과 폐렴 증상을 나타낸 경우가 있었고, 이들에게서 레지오넬라 항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1967년 미국 미시간 주 폰티악의 폰티악 열(Pontiac fever), 1965년 워싱턴 DC 성 엘리자베스 병원에서의 폐렴 아웃브레이크 등도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이 세균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가끔씩 사람들에 감염시키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냉각 시스템과 같은 현대 문명과 함께 돌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레지오넬라균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병원균을 배양할 수 있는 일반 배지로는 가능하지 않다. 철과 시스테인이 포함된 특수 배지인 목탄 효모 배지를 써야만 배양할 수 있다. 까다로운 배양 조건 때문에 오랫동안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고, 또 필라델피아에서도 금방 원인균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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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뷰 스트래퍼드 호텔 (필라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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