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들은 세속의 기준으로 잘 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짝이 없다. 짝이 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혼자다.
간첩으로 몰려 감옥 생활 중 짝이 떠나가거나(<명태와 고등어>)
생활력이 없는 남편과 이혼하고, 키우던 아들은 특수강간죄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거나(<손>),
IMF 와중에 사업이 망하고, 그나마 집이라도 건지기 위해 한 위장 이혼이 실제 이혼으로 이어지거나(<저녁 내기 정기>),
삼십 년을 살고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헤어지거나(<대장 내시경 검사>),
노량진 고시원에서 생활비를 아끼고자 계약을 맺고 동거를 하다 한 명은 합격하고, 또 한 명은 떨어져 자연스레 관계를 청산하거나(<영자>),
전방 GOP에서 북한군과 마주하다 제대하고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거나(<48GOP>),
짝 없는 수녀로 살다가 호스피스 수녀원에서 죽어가거나(<저만치 혼자서>).
소설이 침잠하는 건 시대가 더 호화스러워지기에, 겉보기와 달리 이렇게 쓸쓸하고 헛헛한 삶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김훈의 문장은 여전히 건조하다. 그는 뼈대만 남은 문장에 겨우겨우 몇 글자를 더 얹을 뿐이다. 형용사도 없고, 부사도 드물다. 그렇기에 이 건조한 문장들로도 삶의 헛헛함이 깊게 새겨진다. 묘한 일이지만 늘 그렇기에 신기한 일은 아니다. 결정적 사건 없이도 긴장하며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건 이 건조하면서도 명료한 문장 때문이다.
뒤의 <군말>을 보면 소설이 어떻게 구상되었는지 알 수 있지만, 그 구상만으로 소설이 다 설명되는 건 아니다. 소설은 그야말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