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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에 그린 국가와 우리의 운명

페데리코 람피니, 『지도 위의 붉은 선』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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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위의 선은 시시각각 그 위치를 달리한다. 지도 위의 선은 국경이 되기도 하지만, 권력자들이 그어놓은 인위적인 경계이기도, 경제적 공동체의 구분이 되기도, 그리고 사람들 마음 속의 경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선 안에서 살아가고, 그 선 밖을 경계한다. 우리 국가, 지역, 그리고 가족, 개인의 운명이 그 선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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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기자이자 작가 페데리코 람피니는 지도 위에 여러 붉은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이라고 하는 현대의 제국의 몰락의 징후를 찾기 위하여, 중국이 넓혀가고 있는 영향력의 현상과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독일이라는 위험했던 국가의 지향점에 대해 분석하기 위하여, 러시아라는 구시대적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거대한 제국의 도발을 이해하기 위하여(이 책은 2017년에 나왔기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쓰여졌지만, 이미 그때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바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강대국들의 지리적 경계와는 또 다른 오로지 소프트파워로 존재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인식하기 위하여 그는 ’붉은‘ 선을 긋고 있다.


이러한 선들을 통하여 세계의 정세가 어떤 한 가지의 힘이나 의도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파악했던 세력 판도는 다른 차원에서는 또 다른 판도를 파악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들은 교차한다. 이 복잡한 세계 정세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사의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똑바로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복잡한 세계 정세 속에 우리도 한복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 때문이기도 하지만(북한이 미사일로 공포를 조장하던 시기다), 평양의 위협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그어지는 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정세를 그저 구경꾼으로 바라볼 처지가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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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관심은 단순히 국가 간의 정치적인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난민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구글, 페이스북 등과 같은 인터넷 기술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와 문제점, 기후 문제에 대해서, 사실은 암담한 전망을 피력하고 있다. 흐름을 바꿀 수는 있지만, 과연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긋는 선은 자꾸 희미해져가고 자꾸 절망스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또한 역시 이 책이 쓰인 시점 때문에 트럼프에 관해서 언급한다. 그가 파악하는 트럼프는 ’또라이‘에 가깝지만, 그를 밀어올린 현상마저도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그가 표를 받고 대통령이 된 것은 아주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는 게 그의 시각이며, 거기에는 미국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세력의 불철저함, 그리고 이중성 등이 한몫 했다고 보고 있다. 선한 통치자였던 오바마가 대통령을 마친 후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받고 강연을 하러 다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는 회의적이다.


이미 5년이나 지난 정세인 셈이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가 새로이 이 책을 쓴다면 뭔가가 크게 달라질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각국의 ’우경화‘의 흐름은 ’모두 트럼프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평등에 반대하면서도 불평등한 세상의 덕을 보고 있는 진보적인 엘리트의 예에서 보듯이 단순히 분노나 비아냥만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


저자는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의 기자로 시작하여 수십 년 간 외신 특파원으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살았고, 중국에서도 살았다. 그가 기자로서, 혹은 세상에 대한 진지한 관찰자이자 비판자로서 쓴 일기, 취재 기사, 그리고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들을 이 책에 녹여내고 있다.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관점은 다시 한번 나의 관점을 점검하게 한다.


다만... 정말 번역은 형편없다. 앞뒤 문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고, 번역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도 많다. ’폴란드 노조위원장 보이티와‘(사실은 바웬사) 라든가 ’사법부 장관‘(로버트 케네디를 일컫는 건데, 법무부 장관이라야 한다) 같은 번역이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없다(이런 게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특히 책의 중간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많은데, 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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