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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안중근

김훈, 『하얼빈』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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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중근을 ‘영웅’으로 부른다. 그러나 김훈은 ‘영웅 안중근’이 아닌 ‘청년 안중근’을 기록하고 있다.


새삼 안중근의 나이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서른 한 살이라는 나이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신념에 투철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두려울 수도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꿈을 접어가는 나이일 수도 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나이일 수도 있지만, 아직 삶의 나아갈 바가 분명하지 않은 나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경계의 나이일 수도 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이야기하듯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 창창한 나이라는 점이다. 서른 하나.


김훈은 안중근의 ‘대의’를 길게도, 깊게도 쓰지 않았다. 그가 여순 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의 내용도 지나가듯 다루었다. 오히려 이토의 ‘동양평화론’의 내용이 더 자세하다(이토의 동양평화론과 대비되는 안중근의 것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토의 부분에 표시를 해두었지만 결국은 필요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더 안중근의 행위를 타당하게 여기게 한다. 결국 이토의 생각은 일본만의 것이었을 뿐 그들에겐 조선을 비롯한 ‘동양’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어느 결엔가 강토를 피로 적시게 만든 원흉 이토를 쏘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투철한 신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결연한 의식도 쓰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한 목적에 걸 맞는 섬세한 계획도 없었다. 안중근의 발자취 중에 어느 하나 조금만이라도 어그러졌다면 어쩌면 그날, 1909년 10월 26일은 역사 속에서 기록되지 않고,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날이 되었을지 모른다. 안중근은 많은 독립군처럼 몇몇 문서에 이름만 남긴 채로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른 한 살 안중근은 이토를 저격했다.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나는 운명론을 절대 믿지 않기에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김훈의 필체는 여전히 처연하다. 한 청년의 뜨거운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토가 기생을 자빠뜨리는 장면들도 처연하고, 영친왕 이은이 메이지를 만나는 장면도 처연하고, 순종이 이토에 이끌려 순행하는 장면도 처연하다. 애처로운데, 애처로움은 작가가 애써 진정시키는 청년의 뜨거운 마음과 대비된다. 당시 프랑스인 주교의 행동과 말은 처연하지는 않지만, 조선의 강토가 밖의 누구에 의해서도 지켜지지 못할 것이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애처롭기 그지없다.


더욱 애처롭고 또 처연한 것은 안중근 죽음 이후 가족의 행방이다. 우리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의연함을 칭송해왔고, 그의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의 독립 투쟁에 대해서 기록한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그래서 기억이나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아내 김아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모른다. 더욱이 안중근의 첫째 아들의 이른 죽음에 대해서도, 둘째 아들이 이토를 기려 지어진 박문사에서 이토에게 사죄하고, 명복을 빈다고 한 행위는 발설하지 않는다. 김구가 장제스에게 안중근의 아들을 체포 구금하라고, 교수형에 처해달라고 할 때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김훈은 이 소설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한 청년의 마지막을 통해 인간의 고뇌에 대해 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뇌가 결국은 애국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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