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다, 도시를 탐구하다

로버트 파우저, 『도시 탐구기』

by ENA

로버트 파우저는 관광객의 눈이 아니라 생활인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그곳의 이면을 파헤치며 이해하려 했다. 그는 자신이 생활을 영위했던 도시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가 거쳐간 도시는 비록 전세계를 망라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도시들이었고, 그 도시들에서 그 도시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도시 가운데는 서울과 대전이 있고, 또한 전주와 대구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방문했다. 단지 그가 우리의 도시 가운데 몇 군데를, 우리말로 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도시를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가 더 흥미롭다. 또한 왠지 관심이 가는 도시들, 이를테면 일본의 도쿄와 교토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시의 이미지와 그곳에서 외국인 생활자로서 느낀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흥미롭다.


그는 서울을 ‘비빔도시’라고 했다.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듯한 이 말을 자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복잡하고 다채롭게 섞이고 혼합됨으로써 서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섞인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그 섞이는 과정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 섞이는 과정 속의 갈등 때문이다. 갈등은 부딪히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면서, 어쩌면 도시의 다이내믹한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특히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서울과 도쿄를 비교하기도 한다(그는 도쿄에 먼저 살았었고, 그 후 서울에 더 오래 살았다). 그는 일본의 도쿄를 야마노테와 시타마치로 구분하는 데 동의하고(야마노테는 외부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개발하는 쪽, 상인들의 동네였던 시타마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서울의 강남과 도쿄의 야마노테를 비교한다. 일단 도쿄의 야마노테는 메이지 유신의 탈아 정신에서 비롯된 데 비해, 서울의 강남은 박정희 시대의 군사적 발전 모델에 뿌리가 있다. 둘 다 발전과 개발의 욕망의 산물이지만 그 뿌리가 다르다. 그래서 파우저는 야마노테에서는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강남에 개발되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강남에서는 ‘계획 도시의 엄격함과 권위’를 느낀다. 그건 삭막함이었다. 물론 그런 이미지는 2000년대 들어서 바뀌지만 우리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몇 군데의 도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일본의 교토다. 그에게 그곳은 직장 면에서는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준 곳이었지만, 고도(古都)로서 간직한 어떤 푸근함이 그 스트레스를 풀게 한 곳이었다. 내겐 한 여름 ‘걸어서’ 샅샅이(?) ‘탐구’(?)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가 군데군데 얹어 놓은 사진들이 익숙하고, 또 기억이 새로워진다. 다시 가고 싶다기 보다는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비록 파우저와 같이 생활인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도시에 살면서, 도시의 확장과 개발, 그리고 쇠락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그 쇠락을 어떻게 하면 극복하고 살 만한 생활의 터전으로 도시를 간직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한옥 보존을 위한 활동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도시의 핵심적인 특성인 확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된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과 개발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나도 내가 살아온 곳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이 있다. 그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추일 수 밖에 없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73299463?art_bl=1255892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일을 위한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