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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가 읽은 물리학

해리 클리프, 『다정한 물리학』

by ENA

나의 블로그를 계속 봐온 이들은 이미 짐작하겠지만 나는 생물학자다. 생물학자와 물리학자의 간극은 생각 외로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 물리학의 법칙이 생물에 적용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물리학의 원리를 적용한 기구를 이용해서 생물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의 원리를 가지고 물리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까마득한 일이라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래서 대대로 물리학자가 생물학자로 전환한 경우는 종종 있지만(델브뤼크 같은 경우, DNA 구조의 공동 발견자 크릭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생물학자가 물리학자로 전향한 경우는 거의 들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생물학자로서 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수준에 관계없이 늘 도전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하다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문장이 글자의 조합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는데, 늘 의심 가는 것은 그렇게 애써 겨우겨우 읽고 무엇이 남았는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책을 읽고, 다음 책을 읽을 때 분명 이해가는 영역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확장되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도 믿음의 영역이지 구체적으로 확증된 바는 없다. 늘 그러면서도 가끔씩 물리학 교양서를 읽는다. 독서란 아는 영역을 공고히 하는 것보다 모르는 영역에 조금씩이라도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확신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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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을 읽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생물학자의 소감은 어떨까? 우선은 지금까지 읽었던 수준이 되는 물리학 교양서와 그다지 않다는 점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다른 게 아니라 앞서 얘기했듯이 어느 부분까지는 이해하다가 서서히 난독(難讀)에 가까운 부분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러더퍼드나 톰슨의 실험,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에 대한 증명, 채드윅의 중성자 발견, 심지어 CERN에서의 힉스입자 발견 정도까지는 좀 모자랄 수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면서 읽었다. 하지만 반전성(parity) 혹은 반전성 위배(parity violation), 스팔레론, 약전자기 상전이, 뉴트리노, 페르미온을 지나 셀렉트론, 포티노, 글루이노, 위노, 지노, 힉시노, 스쿼크 등에 이르면 거의 외계어 수준이 되어 버린다. 여전히 생물학자가 물리학 책을 읽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과연 저 낯선 용어들, 정확히는 대부분 입자들을 부르는 이름들을 물리학자라고 해서 모두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만약 저런 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물리학이 이처럼 어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물론 잘 알고 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나의 몰이해에 가까운 어려움은 어느 정도는 이해될 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 역시 전문 물리학자들만을 대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저 이름들을 외우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알리려 했을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나는 그것을 잡아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이 책을 생각한다. 우리말로는 “다정한 물리학”이라고 해서 매우 ‘다정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제는 더 다정해 보인다.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즉 “무(無)에서 사과파이 만드는 방법”이다. 이 제목만 가지고는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데, 조금만 책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우주에서 어떻게 입자라는 것이 생겨서 결국은 사과파이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다. 결국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혹은 입자의 기원을 탐구해온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실험입자물리학자다. 이 ‘실험입자물리학자’라는 위치 자체가 조금은 독특하다. 지금까지 물리학에 관한 교양서적을 쓴 이들은 대부분 ‘이론물리학자’들이다(이 부분을 역자인 박병철도 지적하고 있다). 책상과 의자, 볼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론물리학자들이야말로 물리학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또 책을 쓸 시간도 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험’을 생각해보자. 실험은 이론처럼 딱! 들어맞게 나오지 않는다. 실험은 늘 변수가 존재하고, 늘 편차가 있으며, 과학자들은 그 오차와 오류 사이에서 고민하고, 절망한다. 어느 정도나 들어맞는 것을 맞다고 해야 할지. 또 실험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야를 넘어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당연히 책을 쓸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그래서 실험물리학자 해리 클리프의 이 책은 좀 의외인 책이다.


그래서 다른 물리학 교양서와 관점이 좀 다르다. 이론으로 무장해서 깔끔하게 서술하기보다는 이론을 설명하지만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험의 데이터에 대해서도 많이 설명한다. 중요하게는 실험이 이론을 부정하는 데이터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데, 그 결과로 이론을 수정하고 물리학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는 것을 강조한다(역시 그는 실험물리학자다!). 물리학의 이론은 우주의 탄생과 쭉 이어지는 생명의 탄생, 나아가 사과파이의 제작까지 설명해내지만(정확히는 설명해내려 하지만) 물리학의 실험은 늘 삐걱거린다. 그러면서 증명해내기도 하지만(최근의 가장 큰 성과가 바로 힉스입자의 발견과 중력파의 검출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론을 도무지 검증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좌절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바로 과학의 매력이며 가치다.


입자물리학은 19세기 말엽부터 지금까지 약 150년에 걸쳐 있는 학문이다. 이 시기 동안 입자물리학은 대단한 발전을 거듭했다. 놀라운 이론을 정립해냈고, 경악스럽기까지 한 수준까지 입자를 쪼개고 쪼개 사물의 근본 입자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런 입자가 만들어졌고, 그 입자들이 모여 원자가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입증할 수 없는 이론인 끈이론이 나오고, 인류원리라는 걸 내세우기도 한다. 가장 정교한 학문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과학자로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독자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우기를 원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생물학자로서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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