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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생물학자의 생명에 관한 질문

정우현, 『생명을 묻다』

by ENA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를 읽은 소감을 쓰면서도 밝혔지만 나는 생물학자다(https://brunch.co.kr/@kwansooko/695). 생물을 가지고,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생물학도 여러 분야로 나뉜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 분야로 나뉜 생물학 사이에 간극이 정말 크다는 점이다. 물리학에서의 하위 분야나 화학에서의 하위 분야 전공하는 이들이 상대 분야에 대한 이해도와는 상대가 되지 않게 생물학에서 하위 분야끼리는 서로 아주 다른 분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분자생물학자는 생태학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결론 내리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들고, 생태학자는 분자생물학의 현란한 기법들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다. 아니, 익숙하지 못하다기 보다는 아주 낯설다. 논리도 다르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도 오해도 생긴다. 어쩌면 생물학이란 학문의 태생에서 비롯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세포를 연구하고 생명을 구성하는 DNA나 단백질을 연구하는 분야는 서로 출발점이 달랐다. 분류학 등이 딛고 있는 받침 위에 분자생물학이나 생화학이 세워진 게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분자생물학은 분명 물리학의 전통이, 생화학에는 화학의 전통이 짙다. 가끔 분자생물학이나 생화학과 같은 분야가 과연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앞에서 분명 ‘생물학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나를 생물학자로 밝히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데 있기도 하다.


정우현 교수는 분자생물학자다. 분자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분자 단위로 연구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분자생물학은 상당 부분 물리학을 토대로 한다(물론 물리학의 분과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이 말은 또한 환원적인 과학이라는 얘기다. 생명 현상 중 관심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성과로 내놓는다. 그런 연구 성과들이 종합되었을 때 생명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제 연구하는 이들은 거기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신이 다루는 분자나 경로(pathway)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사실 그것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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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자생물학자가 교양 과학서를 내놓았다고 하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노화에 대해서, 암에 대해서, 혹은 신경에 대해서 연구의 흐름을 보여주고, 그것들을 조절하는 분자와 경로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보여주고, 앞으로의 전망을 알려주는 책 정도? 분야야 다양할 수 있고, 방식도 다양할 수 있고, 수준도 다양할 수 있지만, 적어도 빌 브라이슨과 같은 식은 아닐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제목이 “생명을 묻다”이니 만큼 생명 현상에 대하 포괄적인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다루고 있는 분자나 경로에 대해, 그것이 생명 현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도는 다루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자 정우현이 쓴 이 책은 그런 예상, 혹은 기대를 산산이 깨부순다. 다 읽고 표지를 보니 이 책에 대해 애초 놓쳤던 것이 보인다. 부제가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이다. “과학이 밝히고 있는”이 아니라 “과학이 놓치고 있는”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과학이, 생물학이, 분자생물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주로 얘기하고 있고, 생명 현상의 본질에 대해서 과연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다분하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15가지 질문이라고 했지만, 그것 다시 몇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생명을 요약하고, 단순화하는 것을 이 책은 굉장히 경계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책을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장의 것들은 생명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생명이란 우연적인 것인지, 필연적인 것인지, 입자인지, 혹은 흐름인지, 최초에 어떻게 나타난(혹은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진화하는 것인지 등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다음의 질문은 생명의 특성에 관한 질문이다. 여기에는 유전자와 유전학에 대한 이야기와 분성과 양육 논쟁도 있으며, 이기적 유전자, 혹은 이타주의에 대한 논쟁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생명, 내지는 생물학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는 현대 생물학이 추구하고 행해지는 방향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다. 기계론적인 방법론, 생명, 즉 유전자를 조작하는 연구에서의 윤리 등에 대한 문제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저자 정우현 교수의 생각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라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몇 가지는 언급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선 첫 째로는 이 질문 자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의 질문은 사실 매우 협소하다. 이를테면 자신이 다루고 있는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것이 다른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지, 좀더 나아간다고 해도 이것을 통해서 과연 노화를 막을 수 있는지, 암을 극복할 수 있는지 정도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질문은 상당히 본질적이다. 본질적인 질문이 과연 논문 한 편을 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런 질문이 자신의 과학에 의미를 주고, 혹은 새로운 방향을 가져올 수는 있다고 본다. 연구를 직접 하지 않는 이라면 과학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해가 결국은 과학의 바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 책은 많은 과학자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철학자, 소설가 들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외피는 과학 교양서이지만, 정작은 인문서처럼 읽힌다. 과학을 이해하는 데 과학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다만 너무 현란하다는 느낌은 있다.


여기의 질문들이 상당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했고, 또 과학의 자기 반성과 회의적 태도도 필요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질문과 자기 반성, 회의적 태도도 필요하지만 지나친 비관주의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과학이, 생물학이 지나친 환원주의로 생명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진화학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한계나 편의적인 해석에 경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그게 자칫 불가지론에 빠질 우려가 있다. 군데군데서 그런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 없지 않다.


연구자들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그 질문이 깊어질수록 철학이 된다. 이 책은 그걸 보여준다. 철학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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