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마음을 읽는다

리처드 테일러,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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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는 법정신의학자다. 다소 생소한 직업인 법정신의학자는, 말하자면 ‘법’과 ‘정신의학’ 사이에서 둘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이다. 범인의 행동 특성이나 심리 등을 파악하여 범인 검거 등에 도움을 주는 프로파일러나 사체를 분석하여 사인을 알아내고, 범죄의 특성을 통해 역시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는 법의학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범인 검거에 도움을 준다기보다 범인의 정신 상태를 분석하여 범인을 교도소로 보낼 것인지, 정신 치료를 받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을 한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며, 치료도 하고, 때로는 범인을 검거하는 데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활약을 펼치는 무대는 교도소와 병원 사이 그 어디쯤이다.


영국에서 약 300~400명 가량이 법정신의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한 명인 리처드 테일러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 내지는 범죄자들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강간 살인, 정신 이상자의 살인, 존속 살해, 영아 살해, 자식 살해, 남성 애인에 의한 죽음, 여성 애인에 의한 죽음, 알코올 중독 등에 의한 살인, 살인 후 기억 상실(혹은 기억 상실 중 살인), 테러 혹은 대량 학살 등 끔찍하기만 한 살인 사건의 가해자들을 인터뷰하고 기록들을 토대로 그들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고 있다.


그의 분석은 살인을 저지른 이가 정신 이상 범주에 있어서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져 살인자를 교도소가 아니라 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의 일은 종종 오해받기가 쉽다. 범죄자에게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어떤 행정상의 미비로 인해 살인자를 놓쳐 더 큰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 내지는 법정신의학자의 작업은 살인을 저지른 이들의 정신 상태와 사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어떤 이가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를 파악하고, 그 조짐을 알아차림으로써 살인 사건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저자는 종종 자신이 법정신의학을 발견하고, 선택한 게 아니라, 법정신의학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의학 분야에서 경험을 하면서 결국은 법정신의학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의 가족사(그의 이모가 정신 이상 상태에서 영아 살해를 저지른 이력이 있다)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의 가족사는 가족들에게 아픔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과연 살인자가 유전적으로 정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은 그는 유전보다는 환경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는데, 어쩌면 법정신의학을 택한 이로써 불가피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


나는 정신 이상자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행위에 대해 처벌이 아니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 이상의 범주와 정도에 대해서 매우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살해할 때는 정신이 확 돌아버리지 않나 싶은데 그걸 모두 정신 이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부터 확실한 정신 이상자로서 인정받는 자만이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치료의 과정이 절대 처벌보다 더 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신 이상을 처벌을 모면하기 위한 트릭으로 사용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여성 살해에 대한 부분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과 오버랩되면서 그런 일이 어느 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으며, 그 심각성도 다시금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혹은 약자에게 안전한 사회가 정말 필요함에도 그 길이 요원할 수도 있겠다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법정신의학이 종국적인 해결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살인자에 대한 정신 감정이 얼마나 살인 사건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전하는 극악하고도 어두운 이들에 대한 이해가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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