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으로 읽는 책 이야기

김기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by ENA

박균호의 여러 책과 윤길수의 《운명, 책을 탐하다》 등을 통해 책 자체를 수집하는 태도에 대해 대충 감을 잡았다. 특히 책에서 판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의 판본을 살펴보기도 했다. 초판본일수록 가치가 나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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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는 책 수집가 김기태가 모은 초판본, 그중에서도 1쇄본 다섯 권의 책에 관한 책이다. 그가 수만 종에 달하는 책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책이니만큼 의미가 깊은 책들이라 할 수 있다. 책표지에서 제목과 저자 이름, 출판사이 어떤 방식으로 쓰여 있는지, 표지 디자인은 누가 어떤 의미로 한 것인지, 안쪽 날개의 저자 소개는 어떤지, 사진은 어떤 걸 썼는지, 목차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간기면(刊記面)의 정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서문에 담긴 내용, 책에 담긴 내용, 그 책에 대해 덧붙인 다른 이들의 이야기 등등을 꼼꼼히 읽고 있다.


초판본이고 1쇄본이니만큼 여러 흠결을 찾는 것도 묘미다. 이를테면 책의 제목과 실린 단편의 제목이 조금 다른 경우도 있고(이를테면, 김승옥의 소설집의 제목은 《서울 1964년 겨울》로 쉼표가 없지만, 실제 단편의 제목은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시에서 두 줄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다(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에 실린 <아홉 가지 기도>그 그렇다). 그 밖에도 이러저런 실수를 찾아내지만, 그게 놀림의 대상,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런 형식보다 무엇보다 소개하고 있는 열다섯 종의 책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한 《영랑시선》, 일제에 협력한 죄과와는 별도로 누구나 읊고 있는 싯구를 남긴 노천명의 《사슴의 노래》, 유신 시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에게는 <인연>과 같은 수필로 더 잘알려져 있지만 원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피천득의 《금아시선》, 아내의 영전에 바친 싯구로 최초의 밀리언셀러 시집이 된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과 같은 시집이 있고,

지금도 한국 최고의 소설이라 극찬받으며, 수차례 개작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온 최인훈의 《광장》, 전후(戰後) 세대로, 벼락같이 등장했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중의 이야기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김성동의 《만다라》, 가장 비천한 이들의 삶을 쓴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 대중소설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영화로도 만들어 히트한 최인호의 《고래사냥》, 마흔의 나이에 문단에 데뷔해 우리 주변의 삶, 특히 평범한 여성의 질곡 가득한 삶을 그린 박완서의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와 같은 소설도 있다.

그 밖에 김병익의 평론집 《지성과 반지성》, 법정 스님의 수상집 《서 있는 사람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대중 옥중서신_민족의 한을 안고》도 소개하고 있다.


한 꼭지, 한 꼭지의 글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책들을 살펴보는 게 우리의 문화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개관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이다. 책의 장정은 점점 탄탄해지고, 표지의 서체도 세련되어 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책 안의 활자도 보다 가독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책에 담긴 내용만큼은 그런 외양의 것과는 상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진달래꽃>이라는 시를 외우는 것도, 아직도 최인훈의 《광장》을 필독서로 올리며 읽고 있는 것은 책의 표지가 예뻐서도 아니고, 활자체가 깔끔해서도 아니다. 그 시가, 그 소설이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다시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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