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학문이라던 인류학의 현대적 가능성

질리언 테트, 《알고 있다는 착각》

by ENA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분명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등장했다. 그런데 이 학문이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들어서서 그 사고방식과 연구의 방식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구조를 파악하고, 변화의 양상을 알아내고, 그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인류학을 전공했으며, 학위를 받은 이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질리언 테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의 요체다.


질리언 테드가 쓰고 있듯이, 인류학의 핵심은 “열린 마음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렌즈를 넓히고 이미 아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므로, 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낯선 장소와 이방인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양성에 대해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제국주의의 인류학이 그 다양성을 인종적으로 해석하였던 데 반해, 현대의 인류학이 그 관점에서만 벗어난다면 다양성에 대한 옹호의 학문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타인의 견해와 행동이 아무리 낯설더라도 경청하고 인정할 수 있는 태도(“미리 가정하지 않고 끈기 있게 관찰하고 경청하는 방식”)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도 기여한다.


질리언 테드는 자신의 인류학 연구 경험과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학적 접근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또는 인류학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았을 때의 부정적 상황)을 통해 인류학이 얼마나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변모시켜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분야란 초콜릿 제조업체, 전염병과 싸우는 정부와 의사 단체, 금융업, 자동차 회사,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많은 회사들, 트럼프의 등장, 실리콘 밸리에서 일어난 일들 등등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분야들을 포괄한다. 아이러니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돈과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폐기처분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획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름아닌 인류학적 접근 방식이 그런 것을 알려준다는 게 질리언 테드의 생각이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빅 데이터’를 얘기해왔다.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그것들을 분석하면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상관관계가 인과 관계가 아니며,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만으로 한 사람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류학의 접근 방식, 즉 참여 관찰, 비구조적 질문, 포괄적 이해가 빛을 발휘한다. 더 많은 데이터, 또 그보다 더 많은 데이터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생활하고, (설문 조사와 같은 형식이 아니라) 비구조적인 질문을 통해서 집단을 이루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질리언 테드는 “새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데이터과학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벌레의 눈으로 올려다보면 그렇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경성 과학이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찾아 낼 수 있다. 물론 데이터과학은 필요하다. 하지만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과학에 더해 사회과학도 필요하다.


질리언 테드는 인류학을 대상보다는 방법에 더 가치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 수 있으며,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굳이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옹호하기 위한 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에 대한 시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인류학적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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