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를 주변 민족과의 관계를 통해 보다

김기협, 《오랑캐의 역사》

by ENA

제목은 ‘오랑캐의 역사’이지만, 정작 실제는 중국사(史)다. 다만 중국의 역사를 중국만 중심에 놓고 다루는 게 아니라 중국의 주변 국가 내지는 세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른 중국사와 다르다. 중국사라고 하는 것이 중국이라고 하는 한 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이슬람을 제외한 동양(저자는 이슬람의 역사를 서양사에 넣자는 입장이기도 하다)의 역사를 거의 아우르기도 한다. 중국 주변부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와 따로 떼어내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던 것이 중국의 역사이지만, 그 중국의 역사 역시 이른바 현재의 중국의 영역만을 두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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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란 흔히 남만(南蠻), 북적(北狄), 동이(東夷), 서융(西戎)을 일컫는다(이런 분류에 따르자면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선조도 당연히 오랑캐였다). 중국(中國)이라는 말 자체가 어느 한 지역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그 지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걸쳐서 존재하고 있는 존재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오랑캐라는 말 자체에는 비하의 뜻이 있으나, 이 책에서 말하는 오랑캐라는 것은(사실 오랑캐라는 용어 자체도 책의 첫 머리에나 많이 등장하지 뒤로 갈수록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런 비하의 의미보다는 한족(漢族)이 중심을 이루었던 지역에서 떨어져서 존재하던 민족, 내지는 세력, 즉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중국 대륙의 주인이 한족이었던 시기와 다른 민족이 지배하고 있던 시기는 자주 교차한다. 당, 송, 명이 한족이 지배했던 나라였다면, 금, 원(몽골), 청은 그렇지 않았던 나라였다. 사실 한족이라는 개념도 매우 애매하다고 한다. 한족이라는 게 과연 여진이나, 거란, 몽골 등과 같은 수준의 민족 개념으로 실재하고 있지 않다. 단순히 언어 정도로 구분되고, 중화의 질서를 인정한다면 한족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중국이라는 나라, 내지는 지역을 이루는 중심이 한족이라는 말은 맞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역사를 이른바 오랑캐와 관련지어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거의 통사(通史)처럼 시대를 따라가고 있기는 하지만, 종종 시대를 거스르기도 하고, 앞서 나가기도 하면서 동양사, 나아가 이슬람이나 서양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 ‘열린 제국’과 ‘닫힌 제국’을 번갈아가면서 추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민족을 다루는 방식이 차이가 났으며, 남쪽을 중시했던 시기, 북쪽으로 권력이 옮겨갔던 이유 등이 있었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의 극복이다. 중국의 역사가 이러저러했으므로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혹은 유럽과 어떤 점이 차이가 나서 현재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식의 역사 서술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다. 중국, 혹은 동양의 역사를 그 자체로서, 내재적인 이유와, 혹은 중국과 이민족 사이의 관계, 나아가 서양, 이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밝히고, 또 어떤 선택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서 유럽중심주의의 역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당히 방대한 역사 서술이고, 또 깊이 들어가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중국의 역사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부분만 알고 있어도 배우면서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점도 그리 거슬리는 점은 없다. 어떤 가설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가감 없이 비치는 것도 믿음직하다. 다만 중언부언이 좀 있다. 그것만 좀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이 작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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