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을 그저 작업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이해타산으로 대하는 이와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존경과 애정을 갖고 대하는 이는 분명 그 예술적 성취 면에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287쪽)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5쌍의 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거의 다 후자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모델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며, 화가는 그 모델에게서 예술적 활력을 찾고 있다. 그래서 이주헌은 모델을 ‘명화의 또 다른 창조자’라고 칭하면서 많은 화가들이 모델들에게 허다한 빚을 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5쌍의 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화가와 모델로 만나 정염을 불태운 관계도 있고, 그 반대로 아내를 모델로 삼은 경우도 있고, 그런 사랑이 얽힌 관계가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로만 존재했던 이들도 있다. 그렇게 몇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모든 관계가 서로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예술적 성취에 다다르는 과정도 서로 다르고, 인간적 관계의 전개와 끝맺음도 달랐다. 대체로는 그 관계가 해피엔딩인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루벤스와 엘렌처럼), 그래도 그들의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화가와 모델로서, 혹은 또 다른 인간적 관계로서 무척이나 행복했던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림을 볼 때 모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책은 그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준다. 다만 딱 두 케이스(다비드-카다무르, 칼로-칼로)를 제외하고는 ‘남성 화가-여성 모델’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린다. 지금까지의 미술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명화에서 모델의 역할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화가와 모델의 관계가 평등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 책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