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도시들을 생각해보면, 시간이 갈수록 똑같은 모습으로 건설되어 특징이 없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입지가 다르고, 도시의 역사가 다르고, 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 그 도시만의 특색이 있다.
만물박사 곽재식이 우리나라 열 개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매력이 있을까 싶다. 그동안 그런 매력을 어디에 숨겨 놓고 있었을까 싶다. 어느 풍광 좋은, 알려지지 않은 산천도 아니고, 그냥 늘 살아가고, 또 쉽게 방문할 수 있는 도시인데.
우리의 도시는 형성되고 거쳐온 역사가 다르다. 전주는 견훤의 도시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왕가가 발원한 곳으로 여겨졌다. 속초에는 청동 도끼로 권위를 내세우던 세력이 있었으며, 천년 고도 경주에는 휘황찬란한 황금 왕관을 만들 만큼의 부가 넘쳐났다. 수원은 물의 도시이자 계획도시이며, 우리의 밥을 만들었으며, 우리의 산을 푸르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또한 우리의 도시는 현재 그곳에 심어진 산업이 다르다. 이를테면 청주에는 화장품 공장이, 여수에는 화학 공장이 도시의 산업을 대표한다. 대전은 과학의 도시이고, 제주는 반도체의 도시다. 울산은 강철의 산이 있고, 부산에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기계 팔이 있다.
곽재식은 이런 것들을 이리저리 엮으며 그 도시만의 매력을 한껏 부추기고 있다. 이 글들을 읽으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 같다(당연히 이 책에는 서울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잊지 않는 것이 도시를 더 가보고 싶어할 수 있게 할 방도를 고민하는 것이다. 유적을 어떻게 하면 돋보이고 찾게 할 것인지, 도시의 건물을 어떤 식으로 지을 것인지 등등. 이와 함께 소설가인지라 고대의 전설과 유물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과 SF 소설을 상상한다. 어쩌면 여기의 이야기들 중 한두 가지는 이미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두 가지만 소개한다.
하나는 제주의 물 이야기와 반도체 이야기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물이 귀했던 곳인데, 바로 그 귀했던 이유 때문에 제주도의 물이 우리나라 먹는 샘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외국에서도 큰 인기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리고 제주의 수출액 중 가장 큰 비중이 반도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제주와 반도체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곽재식의 설명을 들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하나는 수원의 이야기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수원 얘기가 아닌데, 동요 <오빠생각>에 얽힌 이야기다. 이 동요의 가사는 당시 수원의 한 여학생 최순애가 12살 때 쓴 거란다(1925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이다). 잡지(찾아보니 <어린이>라는 잡지였단다)에 실린 동시를 보고 나중에 아동문학가가 된(아니, 그때부터 동화를 쓰고 발표했으니까 이미 아동문학가였다) 16살의 이원수가 편지를 보내면서 알게 되었단다. 몇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 만나기로 했는데... 이원수가 독립운동 관련으로 경찰에 붙잡히면서 약속 장소(수원역)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끊길 것 같은 인연은 <오빠생각>의 실제 오빠(최영주)가 동생이 이원수와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놓고, 결국은 만나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빠생각>을 흥얼거렸다. 이제부터 좀 달리 들리지 않을까? 참고로 최순애의 동시에 곡을 붙인 것은 5년 후 작곡가 박태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