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공포물입니다."

스티븐 킹, 《나중에》

by ENA

“이 이야기는 공포물입니다.” 이 말이 자주 반복된다. 유령(?)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유령을 볼 수 있고 대화도 하는 소년 이야기이기도 하고, 살인 사건도 등장하니...


그런데 이 소설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한 소년의 성장 소설 느낌이라고 할까? 스물 살 갓 넘긴 청년이 대여섯 살 때부터 십여 년간의 경험을 회고한다. 그런데 1947년생 작가의 성장 소설이라니... 그 젊은 감각이 대단할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일을 회고하고 있으니 “나중에(later)”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라는 말에는 어쨌든 그리 될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숙명론적 생각이 들어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를 이루는 많은 상황이 결국은 과거의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적극적 가치관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둘의 어느 사이 쯤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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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본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그 죽은 사람이 단 며칠 간만 보이고 목소리도 들리다가 사라져 버린다는 설정이나, 죽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참신하다. 거짓말 하지 못하는 유령이라는 설정이 이 소설에서 제이미가 겪는 사건의 원천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유령이 그렇다면 이 소설은 정말 밋밋해져버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유령의 존재가 등장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그 과정을 거치며 제이미는 성장한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특히 버켓)의 조언과 도움, 스스로의 극복으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실 진짜 반전은 그게 아니다. 제이미 탄생의 비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탄생의 비밀 수준을 뛰어넘는, 그런 탄생의 비밀이다. 내 생각엔 그걸 알게 된 제이미에게는 그게 더 공포라 여겨진다. 진실이 더 공포스러운 현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극복해낸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 공포물도 소화해낼 수 있고,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영화화 된 것이 많다. 이 소설도 영화화될 것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그러면 장면이 또렷해진다. 궁금한 건 얼굴 반쪽이 날아가고 뇌가 흘러내리는 유령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언제나 관건은 그럴듯함인데, 소설보다 유치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해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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