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아들고 일본의 ’사상(思想)‘이란 게 뭐지?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저자도 <들어가며>의 첫머리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나카에 조민의 발언,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엔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말까지 인용하고 있다. 근세 이후 서양 철학의 수입에 의존해온 사상적 흐름뿐 아니라 아주 오랜 과거부터 지배 권력에 순종을 거듭했던(적어도 전체적인 흐름은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 사상이란 게 없는 민족, 국가가 있겠는가? 아무리 조야하고 주류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과거부터 의식의 흐름을 지배해온, 혹은 그 주류에 반대해온 생각이 모인 사상은 반드시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는 서구 사상에 의존 해오던 일본이었는데, 최근 들어 서구 사상계마저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사상의 수입이 끊겼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일본의 사상으로 버텨야 하며, 바로 이 시점이 일본의 사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사상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녀는 일본 사상의 흐름을 ’대전통‘, ’중전통‘, 소전통’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는 사상이 품는 규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시대적 구분과 다름 없어 보인다. 즉 전근대의 사상을 대전통, 근대의 것을 중전통, 전후(前後)의 것을 소전통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여기서 ‘전통’이란 단순한 시대 구분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이 전통으로 중층화되면서 축적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대전통의 구조에서는 신불과 왕권이 축을 이루며, 학예와 생활이 그 양 축에 의존하고 있었다(여기서 신불이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신도를 의미하고, 불은 당연히 불교를 의미한다). 또한 중세 왕권 구조와 천황 중심 구조가, 무가와 공가가 축을 이루는 구조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중전통이 메이지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를 의미하니까 대전통의 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중전통에선 막부 체제가 붕괴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 구조로 전환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천황이 가부장이라는 위치에서 모든 것이 기준이 되었다.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사상도 이 틀 안에서만 수용되었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전통이 형성되는데, 저자는 평화, 인권, 민주 등의 보편적 원리가 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천황이라는 ‘상징’(저자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은 논의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의 흐름은 일본의 사상 역시 정치 구조에 몹시도 의존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왕권과 신불이 양극을 이루었다고는 하고, 중층적이었다고는 하나 저울의 추는 분명히 기울어져 있었고, 막부 체제는 그런 구조를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그나마 유지되던 긴장이 메이지 유신 이후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것으로 나타난다. 비록 왕권이 천황과 섭관, 천황과 상황, 조정과 막부 등으로 변천해왔고, 신불도 그 양상이 단일하지 않고 복잡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사상적 흐름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게 보면 일본에서 모든 사상을 흡수해버리는 것이 ‘천황제’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근세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도 천황에 대한 논의 앞에서는 모든 게 멈춰버리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천황은 현실적인 권력의 측면에서도 신불의 측면에서도 모두 가장 정점에 서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신에서 인간의 위치에 내려왔다고는 하지만(그런 선언 자체가 나는 조금 우습다), 여전히 일본 모든 사상의 종착점이자 걸림돌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응시하다”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저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소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상적 흐름을 서술하던 저자가 책의 마지막을 재해와 테러, 대량 참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저자는 근대에 해결을 미루어왔던 것들에 대한 대가라고 본다. 재해를 막을 수 없지만(특히는 일본에서는), 그것을 통해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 역시 그렇다. 그게 철학의 미래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