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독일의 아우구스투스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면벌부를 비롯한 로마 교황청을 고발하는 95개조 논제를 게시한다. 그로부터 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4년 후 1521년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주관하는 보름스 회의가 열린다. 루터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회의에 참석하여 자신의 신학을 논파하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카를 5세는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며칠간 신변 보장을 약속하고, 루터는 보름스를 떠나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는 중 납치극을 벌이고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1년 후 비텐부르크로 돌아가기까지 루터는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보낸다. 제임스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섬》은 바로 바르트부르크 전후의 루터를 그려내고 있다. ‘밧모섬’이란 복음사가 요한이 계시록을 썼다고 전해지는 그리스의 외딴 섬인데, 루트는 바르트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거기에 비유했다(아이러니하게도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며 <요한계시록>에 대해 제일 의구심을 품었다).
마르틴 루터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은 유럽을 변모시켰다(나는 ‘종교개혁’이라는 용어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은 그가 개혁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이므로). 루터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새로운 교리와 예배 형식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95개조 논제를 발표하고 난 후 점점 교리를 완성해나가고 개혁의 방향이 잡혀 갔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바르트부르크에서의 1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레스턴도 강조하고 있고, 해제를 쓴 황대현 교수도, 옮긴이 서미석도 모두 가조하고 있듯이, 나도 이 1년간의 바르트부르크에서 가장 놀랍고 큰 성과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독일어 성경은 아니었지만(그렇게 알려지기도 했었다), 저잣거리 사람들의 말로 옮겨진 성경은, 이른바 종교개혁의 진짜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믿음이 대리자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믿음의 근거에 접근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야말로 개혁의 가장 크고도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큰 흐름이 되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잘 알려진 것이지만 당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인쇄술이 루터의 저작을 빨리, 널리 퍼뜨리면서 종교개혁이 힘을 얻었다는 것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종교개혁을 추진해나간 루터의 영적인 모습과 함께 지도자,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여 일어난 농민 반란에 대한 태도라든가 유대인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