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가 이뤄진 공간

신병주,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by ENA

신병주 교수가 <머리말>에서 얘기한 대로 역사를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이처럼 공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찾아가는’ 방식은 꽤 흥미롭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공간이 있어야만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공간은 가장 직접적인 감각인 시각을 통할 수 있으니 더욱 생생하게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기획은 상당히 흥미로운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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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이 독특하게 여겨지는 점은 ‘공간’을 중심에 두었다는 게 아니라, 기술의 순서가 조선의 임금 순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쓰는 것이면서도 역사 순서대로 파악해나가는 것인데, 이 둘의 조합이 그렇게 익숙하지 만은 않다. 하지만 조선사 전문가인데다, 노련한 역사저술가인 신병주 교수는 이것을 잘 해내고 있는 듯하다. 길이도 임금별로 특별한 안배 없는 듯, 안배하고 있고, 각 시대별로 특징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 혹은 어쩌면 관계가 없을 듯하면서도 관계있는 장소를 잘 선정하고 있다.


그래서 크게 부담을 갖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역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는, 즉 소외되어 기술되는 임금에 대한 장이다. 이를테면 문종이라든가, 예종, 인종, 명종, 현종, 헌종 등이 그런 임금들이다.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있어서, 혹은 수렴청정이나 세도정치에 휘둘리면서 기를 펴지 못해서 임금으로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임금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자취를 찾아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시대가 뭔가 큰 일이 벌어졌던, 그런 때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궁궐 내의 장소들이나 누각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였던 점도 있겠지만, 너무 임금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시각을 넓혔으면 더 다양한 장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도 훨씬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져본다. 그런 면에서 하회마을이라든가, 광해군의 분조 활동의 장소, 철종(강화도령)이 머물렀던 강화도의 용흥궁 같은 장소들이 식상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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