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에 가다

후쿠오카 신이치, 『생명해류』

by ENA

나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팬이다. 내 책장 한 켠의 그의 책들이 줄줄이 꽂힌 것을 보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볼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그의 책이 나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주문하고 읽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목이 『생명해류』. 무얼 의미하는 제목인지부터 궁금했다. 표지의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라는 부제목이 이 책의 정체를 거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그걸 후쿠오카 신이치는 어떻게 풀어갈까? 아니 그보다도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왜? 갈라파고스? 그런 의문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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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들어가며>에서 그 사정을 길게 소개하고 있다. 그가 갈라파고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며, 그곳에 갈 수 있게 된 상황이며, 거기에 곁들어지는 이야기들(어떻게 작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NHK의 방송을 하게 된 사정, 일본 출판계의 이모저모 등등)을 <들어가며>에서 쓰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하는 이야기치고는 좀 길고(전체 책 두께에 비해), 또 뼈대에서 벗어낫다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는 있지만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사정을 통해 후쿠오카 신이치는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마지않던(그만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갈라파고스에 가게 된다. 그것도 단훈한 여행객이 아니라 다윈의 발자취를 ’거의‘ 따라서.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19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바로 직전에!


본격적인 내용은 갈라파고스에서의 5박 6일의 이야기다. 갈라파고스에서 본 것, 겪은 이야기들이다. 갈라파고스의 역사도 있다. 어떻게 서구 열강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고 에콰도르의 영토가 되었는지, 다윈이 이곳을 찾았을 때의 상황이라든가 등등. 갈라파고스의 생물들이 어떻게 이 절해고도에서 살아갔는지에 대한 추측과 함께 이 동물들이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놀라운 광경들에 감탄한다. 아! 나도 갈라파고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데 좀 실망이다. 갈라파고스의 지질과 생물에 관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더듬는 느낌이다. 생명에 관해 깊은 통찰처럼 보이는 얘기도 이미 다른 책에서 했던 얘기고, 그것이 여기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감탄하고, 신기해하고, 반성하고... 이런 게 이어진다. 음식에 대한(정확히는 5박 6일의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한 요리사에 대한) 칭찬과 변기 시설에 대한 아주 자세한 분석 등등이 ’생명해류‘라는 제목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조금 아연하기도 하다(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길고 자세하다. 마치 이게 주(主)인 것처럼). 후쿠오카 신이치에게 기대했던 것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다만 후쿠오카 신이치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흔히 말하는 ’갈라파고스화‘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과는 달리 갈라파고스가 “생명 진화의 현장이고, 지금도 엄연히 발전하고 있는 곳, 즉 막다른 길이라기보다는 최첨단인 곳”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건 이미 그랜트 부부의 연구 등을 통해서 깨닫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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