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4월 25일자 <Nature>지에 역사적 논문이 실렸다. 왓슨과 크릭이 밝힌 DNA의 구조 논문이었다(저자 순서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됐다).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논문이 있었다. 윌킨스, 스톡스, 윌슨이 저자인 나선 이론에 관한 논문과 프랭클린과 고슬링이 A형과 B형 DNA의 변환에 관한 논문이 함께 발표되었다. 한꺼번에 DNA에 관련한 논문이 쏟아진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정, 정확히는 과학의 정치가 있었다. 캐번디시 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이 당시 영국 과학계의 불문율을 어기고 DNA 연구에 뛰어들어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이 연구의 우선권을 쥐고 있던 런던대학교의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각 기관이 수장이 <Nature>지 편집장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같은 호에 논문을 싣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왓슨과 크릭의 논문만 기억한다.
의학사학자인 하워드 마르켈은 DNA 발견의 역사, 넓게는 1868년 스위스의 의사 요하네스 미셔가 DNA를 발견할 때부터, 좁게는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DNA 연구에 뛰어들고, 제임스 왓슨이 덴마크의 연구소에서 탈출하여 캐번디시연구소로 와서 프랜시스 크릭과 의기투합하게 되는 1950년 즈음부터 1953년까지의 격정적이고 기묘한 과정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DNA 발견의 역사에 관해서 가장 널리 알려졌으며, 따라서 거의 정본처럼 여겨지는 기록은 1968년에 제임스 왓슨이 써서 발표한 『이중나선』이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이 책은, 사실 역사적 기록이라고보다는 하나의 감상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감상문이나 개인적인 일기에 더 가깝다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당시에 벌어졌던 사실을 상당히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프랭클린에 대한 여러 기록이 그렇다. 프랭클린을 까탈스럽고, 남과 협력하기 싫어하며,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석하지 못한 불완전한 여성 과학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왓슨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중나선』이다. 어쩌면 하워드 마르켈이 이 책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이중나선』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 발견에 관해서는 굉장히 많은 비판이 있다. 단 하나의 자신의 데이터도 없이 쓴 논문이었던 데다,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몰래 보고 그것을 토대로 모형을 제작했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참고 문헌이나 내용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점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데이터에서 그런 발상을 해낸 데 대해서만큼은 인정하는데 사람들은 어느 쪽에 더 무게가 기우는지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하워드 마르켈의 시각은 분명하다. 프랭클린은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젊은 (그래서 매우 영악하며 미숙했던) 연구자들(즉, 왓슨, 크릭, 윌킨스 등)으로부터 놀림과 배척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왓슨과 크릭의 모형 제작이 성공한 이후에는 당시 영국 과학계의 주요 인사들에 의해서 교묘히 그녀의 업적이 묻혔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윌킨스와 왓슨을 비난의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윌킨스는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프랭클린과 부당한 대우를 하며 척을 지어 DNA 구조 발견에서 후발주자인 왓슨과 크릭에 뒤처지고 말았다는 것이고, 왓슨은 말하자면 매우 똑똑하지만 제멋대로인 사내로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하면 크릭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적이지 않으며, 세계적인 화학자로 역시 DNA 구조 규명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처절한 패배를 맛본 라이너스 폴링에 대해서도 성격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묘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프랭클린의 외모나 성격에 대해서 지적하고, 비아냥거린 1950년대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면서 왓슨의 외모나 크릭의 웃음소리나 목소리에 대해 반복적으로 지적하며 흉보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프랭클린의 업적은 이제 상당 부분 복원되었다고 보이고, 그의 비극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은데(일찍 죽는 바람에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점 등), 그녀를 복원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반대편의 인물들을 지나치게 깍아내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당시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거기에 참여했던 많은 인물들의 행동과 태도, 심리에 대해서 아주 세세히 밝히고 있어 위대한 과학의 뒷장면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은 탁월하거나, 좀스러웠으며, 위대했거나, 너무 인간적이었다.
끝으로 한 가지. 왜 왓슨과 크릭은 성공했고,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실패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이다(사실은 나 말고도 이렇게 지적하는 사람은 많다). 왓슨과 크릭은 함께 했다. 남의 데이터를 거의 훔치듯이 했지만, 그들은 처절히 토론했고, 서로의 생각을 비판하고, 또 받아들였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했고,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알려줬다. 반면에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완전히 따로 놀았다. 데이터도 공유하지 않았으며(아주 드물게 공유한 데이터, 즉 51번 사진을 윌킨스는 아무 생각 없이 왓슨에게 보여줬다), 상대방을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특히 윌킨스). 그러니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만약이지만 서로가 X선 회절 사진을 두고, 또 다른 측정값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면 아마도 DNA 구조 발견의 업적은 이 둘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이런 협력의 관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은 라이너스 폴링에게도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