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감각의 거짓말』

by ENA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눈, 귀, 피부, 혀, 코와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해 모양과 색깔, 소리, 촉감, 맛, 냄새를 인지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빛이라든가 음파, 화학 물질 등을 감각 기관이 인지하고, 인지의 내용(말하자면 정보)이 신경계를 통해 뇌까지 전달되고, 뇌가 정보들을 종합해서 판단내리는 과정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중간의 과정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는 것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가 봤으니, 내가 들었으니, 내가 해봤으니” 등등의 표현이 가리키듯 이 감각의 정확성에 대단히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감각은 믿을 만 한 것인가?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니 알아가고 있다. 감각이란 어느 정도까지만 믿을 만 하다는 것을. 2차원의 종이에 그린 그림을 보고 3차원으로 해석한다든지, “The Dress” 사건과 같은 것에서 보듯이 우리의 감각은 제멋대로다. 우리는 우리의 기대와 예측에 따라 감각의 정보를 해석한다. 우리는 우리의 오감(한두 가지의 감각을 더하는 경우도 있지만)을 통해 세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지만(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그 오감이 반드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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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장애와 뇌전증(과거에 간질이라고 불렸던 질병이다) 전문가인 영국의 기 레슈차이너는 감각에 문제가 생긴 스무 명의 환자들을 통해 우리의 감각이 과연 얼마나 예민한 것이면서 또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유전적인 것도 있고, 충격에 의해 감각 기관에 이상이 생긴 것도 있고,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계나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뇌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전혀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레슈차이너는 자신의 환자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경우 인터뷰 등을 통해서 그들에 조심스럽게 다가갔으며, 그들을 통해 우리 감각의 허약함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귓속에 확성기가 달린 것처럼 너무 많은 소리가 들리거나, 모든 것에 색깔이나 맛을 인지하는(공감각) 이들도 있고,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좀비와 같은 얼굴들이 가득 찬 것처럼 세상을 보는 이도 있다. 화가이지만 마음속의 스크린이 꺼져버린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 여인이 있고, 너무 많은 것을 꿰뚫어보게 되면서 무엇인 진짜 세계의 모습인지를 인식할 수 없게 된 이도 있다. 불타오르는 맨발을 가지거나, 다리 옆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장애라든가 능력이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알고 살다가 뒤늦게야 자신만 그런 줄 알게 된 사람도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거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세상의 반쪽만 볼 수 있다거나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진단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또한 정상이라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현실과 인식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정신의 산물이며, 뉴런 네트워크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진짜 세계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진실은 없다는 이상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세계는 존재한다. 누구에게는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런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다른 것이다. 서로 달리 인식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그것이 진짜 그렇게 인식되었을 때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이 책의 제목은 모든 사람의 감각이 똑같지 않다는 의미에서 ‘감각의 거짓말’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감각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세계와의 통로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뿐이다. 그 문제를 발설하는 감각은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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