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시민에게 권력을 념겨주기로 결정한 소수의 무모한 그리스인을 잊었을 것이다. ... 가난한 자와 노예를 동등하게 치료할 것을 약속한 히포크라테스적 의사들도 잊었을 것이다. 최초의 대학을 설립하고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차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잊었을 것이다. 막대기와 낙타를 사용하여 겨우 50마일의 오차 범위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한 에라스토테네스도 잊었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의 모든 주민에게 시민권을 인정한 로마인의 법전도 잊었을 것이다. ... 수 세기 동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언어와 지식을 잊어버렸듯이, 이 모든 발견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504쪽)
책은 혁명이었다. 책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기억은 확장되었고, 비록 더뎠지만 지식의 권력은 많은 사람들의 품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책은 이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 책이 사라질 거라는 묵시론적 예언이 횡행한다. 전자책이 등장했고, 달리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았는데, 책이 사라지는 건 운명과 같은 거라는 저주 같은 예언이다. 하지만 이레네 바예호는 “정말 그럴까?“라며 이렇게 얘기한다.
“책은 시간의 시험을 뛰어넘으며 장거리 주자임을 입증했다. 우리가 혁명의 꿈에서 혹은 파국적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책은 거기에 있었다. 움베르코 에코가 지적하듯이 책은 숟가락, 망치, 바퀴, 가위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한번 창조된 이후로 그보다 나은 게 등장하지 않았다.”
아, 나는 감격스럽다. 먼 훗날 태블릿은 사라질 수 있어도, 휴대폰이 없을 수도 있어도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 추상같은 선언(“책을 존중하라!”)에 나는 감사하고, 또 안도한다.
이레네 바예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세계주의의 소산이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도서관과 역시 세계 국가를 지향한 로마를 멀리 건너다 본다. 그곳에 놓여졌던 책들의 기원과 운명을 기웃거리고 탐구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고자 했던, 아마도 불가능한, 그러나 너무나 가치 있었던 미션을 추구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얘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진흙 서판에 새겨진 쐐기 문자에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관한 얘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으며,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를 비롯한 비극작가, 희극작가에 관한 얘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로마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파생되어 현재에 이른 모든 유럽인들의 이야기가 된다. 과거와 근대와 현재가 서로 엮인다. 과거의 책이 현대의 책이 되고, 현대의 책은 과거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며, 책의 운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비극과 희극을 진동한다. 그렇게 책은 살아남았고, 번성했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다. 이레네 바예호는 이 책 한 권에 책의 역사에 관해 모든 것을 쓰지 않았지만, 최고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감격스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책은 위험한 시대를 거쳐왔다. 숱한 소멸의 위기를 겪었다. 시작부터 위태하던 책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중세의 쇠퇴하는 어둠에, 진시황과 나치의 광기에, 그리고 현대 문명의 찬란한 빛에, 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도피처로 찾은 수도원에 의해, 볼로냐와 옥스퍼드에 세워진 대학들에 의해, 중국에서 건너온 종이에 의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의해, 백과사전을 집필한 계몽주의에 의해 책은 살아남았고,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책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은 『갈대 속의 영원』을 통해 확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