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시나 이사오, 《절멸의 인류사》
우선 제목의 ‘인류’에 대해서부터 정리를 해야겠다. 여기의 ‘인류’는 우리가 흔히 대화나 글에서 쓰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호모 사피엔스만을 의미하지도, 심지어 호모 속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약 700만 년 전에 침팬지의 조상과 갈라진 이후 존재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이후의 모든 화석(약 25종)과 오늘날의 사람(즉, 호모 사피엔스)를 묶어서 ‘인류’라고 쓰고 있다. 즉, 지금의 사람과 가까운 류(類)라는 뜻이다. 다른 곳에서는 ‘호미니드(hominid)’라고 흔히 쓰고, 아마 저자도 그런 의미로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제목이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절멸의 인류사’라는 것은, 현생 인류가 절멸할 위기에 처했다거나, 그럴 운명(모든 종들은 어쨌든 멸종할 테니)이라는 것이 아니다. 호미니드에 속하는 대부분의 종들(호모 사피엔스만을 제외한)이 멸종하고,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제목을 보고 내가 받은 인상과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분자고생물학인 저자가 수많은 종의 절멸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쓰고 싶었던 주제는, “왜 사람이라는 생물의 독특한 특징이 진화했을까?”라는 것과 “왜 인류(즉, 호미니드) 가운데 사람(즉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을까?”라는 것이다.
사람의 독특한 특징은 잘 알고 있듯이 ‘직립 이족 보행’이다. 그리고 ‘엄니’가 없다는 것도 저자는 중요하게 제시한다. 우선 ‘직립 이족 보행’부터 보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족보행’이라기보다는(다른 동물 중에도 이족 보행하는 것이 있으므로), ‘직립’이다. 저자는 여러 가설들을 검토한 후에, 새로운 자신의 가설을 주장한다. 바로 ‘수컷이 암컷이나 새끼를 위해 손을 이용해 음식물을 운반하기 위해’ 직립 이족 보행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금은 목적론적 설명 같아 보이지만, 저자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이 가설이 꽤 설득력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엄니’가 없다는 것도 사람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야기한다. 엄니가 없다는 것은 공격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이는 평화로운 종이라는 뜻이다.
왜 사람만이 살아남았는가에 대해서도 저자만의 가설을 보여준다. 어느 기간 동안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했는데, 더 강인해 보였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적 기초를 가졌던 것이 호모 사피엔스였고, 네안데르탈인은 그게 부족했다는 것, 또 쓸데없이 두뇌의 크기만 키웠던 네안데르탈인(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보다 두뇌 크기가 컸다. 두뇌 크기가 전부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이 연비가 나빴던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래서 결국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기존의 과학적 성과를 고스란히 반영하면서(그걸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 자신만의 가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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