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조르다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COVID-19가 확산되면서 이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에 관한 책부터 이 사태의 문명사적 의미까지 고민하는 책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어느 것부터 집어 들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그래도 나는 과학에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고, 이 상황의 경제적, 사회적,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서 쓰고 있는 책들은 조금 날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다.
그 와중에 이탈리아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가 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집어 들었다. 많은 책 중에 왜 이 책부터 읽게 되었는지는 큰 이유는 없으나, 그의 이력이 한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젊으며(1982년생), 전공이 입자물리학이다. 그것으로 박사학위까지 받고서 소설가가 되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게 다를 것이란 느낌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초기부터 COVID-19가 급속히 확산되어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많은 사망자가 나온 나라다. 이탈리아에서 봉쇄령 이후에 파올로 조르다노는 “글을 쓰면서 공백기를 보내기로 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현실의 의미를 보다 깊이 고민한다.
이 짧은 책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공백기의 단상(斷想)일 수 밖에 없지만, 적지 않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선 하루하루 변해가는 숫자의 의미(다시 말하면 확진자와 완치자, 그리고 사망자 수)를 달리 보게 된다. 그는 SIR 모델과 R0 값에 주목한다. SIR에서도 특히 S, susceptible, 즉 감염가능자가 주목 대상이다. 그건 면역력을 획득하지 않은, 감염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로 지구인 75억 명 전부이다(현재는. 일부 완치자를 제외한). R0 값은 한 사람이 전파시키는 사람의 숫자를 의미한다. 이 값이 1을 넘어서는 것은 감염자 수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값을 1 미만으로 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살아가는 섬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섬처럼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연대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나부터 조심하면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바로 S의 의미를 고민하고, R0 값을 낮추는 일이다.
그런데 또 다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숫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리’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나왔느냐는 단순한 산수보다는 그 숫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리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우리가 숫자를 넘어서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 의식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쨌던 우리는 섬이 아니며 서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자칫 이 사태가 종식되고 이후 더 삭막한 세상을 맞닥뜨리면 우리의 상실감은 더해질 것이다. 그런 시대는 지금보다 더 우울하고, 절망스러울 것이다. 그런 시대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시대에 연대를 강화하면서 전염의 시대를 뚫고 갈 지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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