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 질환이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감염질환이 항생제 등의 개발로 주적(主敵)의 위치에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암과 심장질환과 뇌혈관 질환이었다. 심혈관 질환은 심장질환과 뇌혈관 질환을 아우르는 말이니, 심혈관 질환이야말로 21세기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혈관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또 이에 관한 연구 개발이 이어지면서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많이 줄었다. 흡연 감소와 같은 위험 요소의 감소와 함께 진단 치료 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심혈관 질환,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남궁석 박사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대 생물학의 발전 양상에 관해 대중들에게 알려왔다. 『암 정복 연대기』나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는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의 지식 갈망을 적절하게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질병들,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을 남궁석 박사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바로 암이나 감염질환처럼 두드러지게 눈에 띄거나 병세가 즉시 나타나지 않지만, 서서히 우리의 목숨을 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질환, 즉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라든가, 높은 혈압, 비만이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례로 20세기 중반 4차례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가 있다. 그의 혈압은 지금으로 봐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의사들은 그게 문제가 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물론 문제가 된다고 여겼더라도 쓸 약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혈압을 낮추기 위한 무슨 조치라도 했을 것이고, 하다못해 연구라도 좀 더 박차가 가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던 것이 우리가 평상시에 가장 염려하는 질환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제약회사들이 대박을 노리고 약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가 효과가 좋은 많은 약이다. 대표적으로 고지혈증(높은 혈중 콜레스테롤)에 대한 스타틴이 있고, 고혈압에는 노바스크가 있다. 비만에 대해서도 인크레틴 유사체로서 몇 가지 약이 나와 승인이 되었다. 그렇게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약들은 우리의 건강한 여분의 삶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약이란 게 우리 몸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바로 잡자고 마음 먹으면 금방 뚝딱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저 많은 물질들을 막 테스트하다보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랜 동안의 기초 연구, 즉 인간의 생리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경로를 이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이해했는데, 그것과 관련된 다른 경로가 튀어나오고, 또 반대되는 현상도 나온다. 약의 활성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이뤄져야 하며, 효과가 기대되는 약이 나오면 동물 실험에서 시작해서, 1상, 2상, 3상 지리한 임상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다가 효과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겨, 투약하는 방법이 부적절해서, 혹은 경제적 효과가 적어 포기되는 약이 부지기수다. 우리가 먹고, 주사로 투여받는 약들은 그 복잡한 과정들을 거친 약들이다. 이 책이 ‘과학자들’을 중심에 놓은 책은 분명 아니지만, 제목을 그리 지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이 책은 그냥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생물학 전공자들에게만 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이 질환의 위험성에 놓여 있다. 이미 여기에 소개된 약을 처방받고 이들도 많다(나도 그중 하나다). 내가 처방받고 있는 약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었는지, 또 어떤 메커니즘으로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그런 작은 궁금증만 갖고 있더라도 이 책은 무척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