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탐구하다

엘리자베스 세멀핵,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

by ENA

어릴 적. 신발에 ‘메이커’란 말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러니까 이름 있는 상표가 붙은 신발을 의미했다. 아이들은 메이커 신발을 신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졌고, 아마 부모님들은 안타까워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한두 번 메이커 신발을 장만하고, 밖을 나설 때 왠지 남들이 내 신발을 봐주길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내가 신는 신발의 상표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상표의 신발이 내게 더 편하다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그게 아내가 권하는 상표의 신발보다 더 싸고, 인지도도 떨어지지만 나는 편한 걸 선택한다. 몇 켤레의 신발이 신발장에 있고, 아침마다 상황에 따라서 번갈아 신고 나간다.


그러고 보면, 신발 역시 실용성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과거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짚신을 신느냐, 아니면 고무신을 신느냐가 신분을 나타냈을 것이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신발 역시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건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바타 신발 박물관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소개를 보면 4,500년 전의 신발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13,000여 점의 신발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다. 하루 종일 신발을 보고, 신발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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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발에 관해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고대 적에는 어떤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 이런 얘기로 시자하지도 않는다. 대신 네 가지 신발 종류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신발들이다. 이 신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 어떻게 변해왔는지와 더불어, 신발이 갖는 의미와 시선들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함께 탐구하고 있다.


우선 우선 로마에서 유행했다 오랫동안 버려졌지만 18세기 말에 다시 서구에 도입된 샌들이다(로마에서 유행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그림을 보더라도, 영화를 보더라도 원로원 의원들의 신발이 다 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실용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면서 도입되었을 텐데, 동시에 갑갑한 사회에 대한 반향도 있었다. 사회는 발가락을 내놓는 것에 대해 경기 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늘어난 여가 시간과 함께 보편적인 신발 종류가 되었다.


부츠는 어떤가? 부츠의 시작은 권력, 지배, 남성성과 같은 단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사냥과 전쟁을 상징했기에 남성의 신발이었던 부츠는 20세기 들면서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서 그런 용도와 상징이 사라지고, 이제는 오히려 여성의 신발이 되었다.


하이힐이 여성성의 극대화를 노린 신발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들어왔다. 프랑스 궁정에서 오물을 피하기 위해서 신었다는 야사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서아시아에서 승마용으로 신은 굽이 달린 신발이었다는 점은 놀랍다. 그러니까 시작은 남성의 신발이었다는 얘기다. 서구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그 이후 욕망의 대상이장 상징이 되었지만 동시에 여성참정권 등을 비롯한 여성 운동과 관련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신발이다.


스니커즈의 어원이 스니크(sneak), 즉, ‘살금살금 걷다’에서 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바닥에 고무 밑창을 대어 다가오는 데 소리가 나지 않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중 스포츠의 확대와 더불어 생산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신발이다. 그런데 거기에 우생학과 파시즘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있다. 물론 개인주의의 영향도 크다. 현대에 들어와서 일부 남성들이 수집에 열의를 보이는 대상이 된 것도 참 이채로운 일이다.


저자는 각 신발에 대해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플립플롭 샌들은 여름휴가와 레저를, 부츠는 건실한 정통성 또는 불온한 지배를, 하이힐은 여성성을, 스니커즈는 스포츠와 도시 문화를” 상징한다.


신발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신발의 문화와 상징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책 속에 가득 찬 사진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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