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금속

기욤 피트롱,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by ENA

‘프로메테우스의 금속’이란 1940년대 미국의 화학자 찰스 코리엘이 희귀 금속에 ‘프로메튬’이라는 이름은 붙인 데서 연유한다. 물론 프로메튬은 정식 원소 명칭이 아니지만,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전달된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하여 문명의 시대를 살게 한 티탄의 아들, 프로메테우스. 이른바 희토류라고도 불리는 희귀 금속들은 바로 그처럼 인류에게 있어 현대의 문명을 떠받치는 소중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그로 인하여 다툼이 생기는 문젯거리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에서 희토류가 가지는 중요성은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서의 충돌이 벌어졌을 때(중국인 선장 구금) 희토류 수출을 막으면서 굴복시켰던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가지게 될 힘은 어쩌면 바로 이 희토류라는 자원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IMG_KakaoTalk_20230522_134407247.jpg



프랑스의 언론이 기욤 피트롱은 바로 이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희귀 금속의 허상과 이를 인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은 희귀 금속이 현대 문명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돌아가게 하는 동력은 자석에서 오는데, 바로 강력한 자석의 원료가 바로 희귀 금속이다. 그리고 많은 첨단 제품, 기기의 재료에 들어가기도 한다. 저자가 부록에 첨가한 전기차라든가 휴대폰에 들어가는 희귀 금속에 관한 그림을 보더라도 희귀 금속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희귀 금속의 허상이다. 정보 사회라든가, 탈탄소 사회 등을 얘기하는데, 그걸 위해서 내세우는 많은 에너지 생산 수단이라든가, 제품에 희귀 금속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희귀 금속이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생산과 이동을 위해서 거의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에 지적되고 있듯이 전기차가 화석 에너지를 적게 쓰는 교통수단이라는 데 회의감이 드는 것 역시도 같은 맥락이다(전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쨌든 석유나 석탄을 때서 나온 에너지다). 이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지만 명확하기 인지는 해야 하는 사실이다.


IMG_KakaoTalk_20230522_134407247_01.jpg



그리고 가장 길게, 깊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다. 중국이 어디까지 희귀 금속을 무기화할 지는 모르지만, 서구의 입장에서도 우려스럽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에 관해서는 자세히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좀 다른 생각을 피력해 보자면 이렇다. 서구는 식민지화 등을 통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자원을 착취하거나, 그것을 무기화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걸 조금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주려고 하는 중국의 방식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 어째 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방식은 우려스럽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세계의 질서를 교란했던(그들의 입장에서는 질서를 세웠다고 해야 하나?) 자신들의 과거(그게 현재로 이어진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가와 반성이 없는 것은 씁쓸하다. 이 책도 그런 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지극히 프랑스 입장에서 어떻게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쓴 책이니 당연하다).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아니 준비할 생각은 하고 있는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발을 탐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