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앤더슨, 《아라비아의 로렌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줄여 T.E. 로렌스. 그냥 로렌스라고 해도 그 사람인 줄 아는 사람. 혹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인물. 바로 그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인물(1963년 그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아랍의 독립을 위해 사막을 내달렸던 풍운아라고도 하며, 혹은 단지 영국의 스파이일 뿐이라고도 한다. 그가 당시 중동 정세에 매우 큰 영향력을 지녔다고 보기도 하지만, 그냥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의 기록 역시 진솔하고 문학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과장과 거짓투성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아랍에서 파이살 후세인 등의 아랍 반란군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대해 함께 싸웠던 것은 사실이며, 또 그가 영국군의 장교로서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스파이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기록 역시 모든 것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의 모험담은 그야말로 매력적인 한 인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스콧 앤더슨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그 로렌스에 대한 기록이다. 그의 삶 중에서도 바로 불꽃 같던 시기를 자세히 추적하고 있으며, 그의 발자취와 함께 그의 마음 속까지도 추적하고 있다. 스콧 앤더슨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지만, 로렌스가 아랍의 독립을 위해 혼신을 다한 ‘고독한 영웅’이라고 본다(로렌스는 “푸른 눈을 지닌 ‘사막의 전사’였다!). 그는 모험을 위해서 아라비아로 떠났고,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그의 활동이 영국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게 아랍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데 대해서도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약속과 투쟁이 정치인과 장군들에 의해 배반당했을 때 크게 절망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스콧 앤더슨은 (물론 로렌스가 모든 분량에서 중심이지만) 이 책에서 로렌스만을 쫓지 않고 있다. 로렌스와 함께 당시 중동에서 활약했던 여러 인물들을 함께 쫓고 있는데, 학자이자 스파이로서 독일 첩보 기관의 수장 역할을 한 쿠르트 프뤼퍼, 미국 스탠더더오일의 직원으로 석유꾼이지만, 나중에는 미국 유일의 중동 정보요원으로 활약한 윌리엄 예일, 그리고 농학자이면서 철저한 시오니스트로서 유대인 첩보조직을 이끌었던 아론 아론손이 그들이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인물들의 활동을 로렌스의 활약과 병렬시키면서 당시 아랍 세계(지금은 중동이라 불리지만)의 재편에 관해 역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들이 활약은 서로 교차되거나 서로 멀어지면서 조금씩 결론으로 치닫는다. 당연히 주인공은 로렌스이지만, 다른 책에서라면 주인공이 되고도 남을 이들이 자신들의 국가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또 좌절하는 이야기는, 로렌스만을 다루었을 때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이를 통해서 현대 중동의 위기가 바로 그때의 제국주의자들의 욕심과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중동의 모순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 프랑스 등의 모순된 협정과 이기심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현대 중동의 탄생》에서 데이비드 프롬킨이 잘 보여준 바가 있다. 그런데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현대 중동의 탄생》의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그때의 일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결론까지도 비슷하지만 서로 상당히 다르다. 《현대 중동의 탄생》이 중동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정치인과 장군의 얘기라면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그들의 지휘 아래 바닥에서 실제 활약한 이들의 얘기다. 《현대 중동의 탄생》이 그냥 그대로 중후한 역사서라면,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기본으로는 역사서이지만(분량도 《현대 중동의 탄생》에 못지 않다), 한 고독한 영웅의 모험담이면서,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