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억 1, 2》
1권까지 읽고, 이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소감은, 물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이 소설을 이끄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보다더 더 인상 깊은 것은 ‘역사’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 상상력이 다다르는 지점도 역사의 한 지점이다. 그 역사의 지점은 정말 역사 속에 기록된 거창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소한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에도 그 순간을 살아간 사람에겐 전 우주와 같은 역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전생 체험이라는 방식을 통해(이 방식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인류가 겪어온 역사의 지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 역사의 지점들이 드러나 비밀이 벗겨지는 ‘판도라의 상자’가 옳은 제목이기도 하고(원제가 그렇다), ‘역사의 기억’에 대한 책이란 점에서 ‘기억’이 옳은 제목이기도 하다.
그(여기서 그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이기도 하고, 소설 속 주인공인 르네 톨레다노이기도 하다)가 이끌어 가는 역사는 주로 잊혀지거나 왜곡된 역사다. 역사 교사인 르네가 학생들에게 바칼로레아에는 나오지 않을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며, 역사에서 가르치는 것 너머에 개인으로서 겪는 숨겨진 진실을 체험하는 것도 그렇다.
작가의 상상력은 1만 2천년전 사라진 대륙이라는 아틀란티스까지 이른다. 거기에서 르네에게 최초의 전생이랄 수 있는 게브를 만나면서 소설은 르네와 게브의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형식을 띤다. 그 대륙의 존재라든가, 그때의 인물이 지금보다 10배나 컸다든가, 아틀란티스가 가라앉기 전 방주를 만들어 이집트로 탈출하고, 그들이 신의 개념을 인간들에게 주입시켰다는 것 등등은 사실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다. 이를테면, 인간보다 10배 큰 존재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길이가 2배커지면, 표면적은 4배, 무게는 8배가 커지면서 도저히 그 무게를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소설은 그런 물리적인 진실을 뛰어넘는다. 과학만 따진다면 작가의 상상력은 너무 협소해질 것이 뻔하기도 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먼 기억이 그때쯤으로 여긴 것 같다. 그로부터 인간의 역사는 굴곡져 왔다. 그것 대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기록하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뇌 어딘가에, 신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100여 개의 전생을 모두 불러모았을 때 나는 그들의 총합이면서, 그 숫자로 나눈 아주 작은 값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금 사는 나의 위대함이기도 하고, 또 나의 보잘 것 없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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