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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26. 2020

1991년 그렇게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마이클 돕스, 《1991》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을 모두 읽었다. 《1945》, 《1962》에 이어 《1991》까지. 마이클 돕스가 책을 쓰고 낸 순서는 읽은 순서는 《1991》부터 거슬러 올라갔지만, 나는 연도 순으로 읽었다(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순서도 연도 순이다). 《1945》, 《1962》를 읽고, 《1991》를 읽다 사정상 중단되었다 이제 마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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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은 《1945》나 《1962》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냉전의 주요 장면(시작에서 절정기, 그리고 종결)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1945》, 《1962》이 바로 그 해의 일을 다루고 있다면, 《1991》은 1980년대 초반부터 1991년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고 있다. 《1945》, 《1962》이 그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농도 짙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만, 《1991》은 그렇지 않다. 냉전의 종결은 결국 한 순간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많은 모순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서서히 일어나다 마지막에 끝이 난 일이었다. 

처음에는 왜 1991년인가 싶기도 했다(물론 ‘1991’은 우리나라에서 번역하면서 붙인 제목이다). 사람들의 인상으로는 냉전의 종결과 관련해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1989년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결국 냉전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소련의 해체(1991년)이며,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그러므로 1945와 1962에 대응하는 제목은 1991일 수밖에 없다. 


마이클 돕스의 다른 책도 그렇지만, 이 《1991》은 더욱 입체적이다. 읽을수록 알 수 없는 압도적인 느낌이 생기는데, 이 압도적인 느낌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자 역사 속에 결코 흐지부지되지 않을 커다란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 커다란 사건을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시간, 다양한 장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바로 그런 입체감에서 나온다.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배치하고, 그 장면마다 장소를 한정시키고 있어 단편들의 모음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 속에서 적절히 배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서로 엮이면서 하나의 커다란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모스크바 주재 <워싱턴포스트>지 기자였던 마이클 돕스는 그 현장에 있었고, 그랬기에 여기의 기록은 생생하다. 바로 그 생생함이 입체감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첫 장면은 1979년 12월에서 시작한다.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사망(1980년에는 유고슬라비아연방을 묶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티토가 사망한다). 브레즈네프는 내가 뉴스를 볼 수 있게 된 나이 때부터 알고 있던 첫 소련 지도자였다. 그 이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의 이름이 올라왔다 사라졌고, 무언가를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쯤에는 바로 고르바초프가 등장했다. 


소련 지도자들이 명멸하며, 고르바초프로 이어지는 그 사이, 그때는 냉전 종식과의 연관성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폴란드에서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이 있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있었다. 체르노빌에서는 원전 사고가 일어났고, 그 밖에 그때는 전혀 뉴스로 내 인식 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몇몇 동유럽 국가의 처절한 움직임이 있었다. 마이클 돕스는 소련의 그 지도자들의 부침 속에 저 사건들을 배치하면서 소련의 공산주의가 기울어가는 현장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그때에도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전의 노쇠한 소련 지도자와 비견되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열린 인물이 어떻게 소련 공산당의 권력을 쥘 수 있었을까? 마이클 돕스의 기술은 결국 ‘어쩔 수 없었다’라는 쪽이다. 소련의 경제 문제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그 ‘어쩔 수 없음’으로 고르바초프가 등장했고, 그 고르바초프의 품성이 최대한으로 평화적인 소련의 해체가 이뤄졌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이클 돕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 지도자의 도덕적 실패와 정치적 고립을 드러나게 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소련인 대부분이 침묵할 때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레흐 바웬사는 노동자 국가로도 불리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노동자 반란을 주도했다. 아프간 무자헤딘은 붉은군대가 무적군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 지도부를 상대로 소련이 이길 수 없는 군비경쟁을 했다. 보리스 옐친은 소련 공산당이라는 거대한 단일체를 산산조각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인민 수백만 명이 비극적인 과거에 직면하게 했다.” (596쪽)


그러나 역시 덧붙이고 있듯이, ‘소련의 공산주의는 자멸했다.’


중국을 생각하고, 북한을 생각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단 2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다(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1980년 티토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김일성이 잠깐 언급될 뿐이다). 천안문 사태에 관해서인데, 그 천안문 사태를 겪고도(혹은 그렇게 진압했기에?), 어쨌든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며, 또 이른바 G2 체를 만들어냈다. 이 책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 1979년, 1980년이면 중국이 소련을 대체해서 미국과 맞서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러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도 관심을 넘어서는 문제다. 저 체제가 계속 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절대 착한 전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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