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등장시켰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 이어 『오! 윌리엄!』을 썼듯. 아, 그런데 좀 다르긴 하다. 루시 바턴이나 윌리엄은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진, 분명한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올리브 키터리지』나 『다시, 올리브』는? 글쎄... 장편소설일까? 단편소설집일까? 그래. 이런 류에 부르는 명칭이 있다. 연작소설. 모든 이야기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등장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주인공은 아니다. 몇 편의 이야기에선 주인공이고, 몇 편의 이야기에서는 조연, 그리고 또 몇 편의 이야기에선 단역, 혹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나 대화 속에 스쳐가는 존재이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올리브 키터리지와 관련되어 있지만, 굳이 그녀가 없어도 되는, 그러나 그녀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이미 나이가 들었다. 그러니 그 후의 이야기인 『다시, 올리브』에선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다. 노년 이후의 삶. 외롭고, 지루하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 물론 외롭고, 지루한 나날이긴 하다. 그러나 그 외롭기 지루한 나날 중에도 굴곡이 있다. 감정의 고저가 있고, 그저 과거만 회상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일상적인 소식처럼 전해지지만, 또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있다. 그걸 그저 자연의 흐름이라고만, 그저 받아들이고, 그저 그렇다고만 여기기만 하는 것일까? 소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이야기만 엮어보면 이렇다. 아내와 사별한 하버드대 전직 교수 잭 케니슨과 밀당 끝에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다. 뉴욕에 사는 족부의학 의사 아들 크리스토퍼의 가족들이 찾아오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며느리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아, 그 사이에 동네 여자의 아이를 자신의 차에서 직접 받아내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 잭이 죽고, 올리브도 심장마비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잭과 살던 집을 처분하고, 노인요양 아파트로 옮긴다. 이렇게만 보면 역시 누구나 겪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사실 그런 이야기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를 만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죽어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 다들 달리 살아가지만, 또 서로 이해할 만한 일들. 그게 이 소설의 이야기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다른 소설의 인물들을 이 연작소설에 등장시키고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뿐만 아니라 『버지스 형제』의 형제들을, 『에이미와 이저벨』의 에이미와 이저벨도 올리브와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는 이저벨은 올리브의 마지막 친구가 된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 그건 아니다. 여기의 사람들은 그런 영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후회도 많고, 가끔은 자긍심도 느끼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전혀 관계없다고 여겼던 사람들, 아니 그런 것도 의식할 수 없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는 관계를 맺게 된다.
어쩐지 서늘한 느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중간엔 따뜻했지만, 또 결국엔 서늘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과연 현명하게 늙어갈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