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과 『오, 윌리엄!』 사이의 이야기로, 루시 바턴이 나고 자란 일리노이주 앰개시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아홉 편이 담겼다.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서도 배경을 공유하는 것 이상의 관련을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나 『다시 올리브』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보다 루시 바턴은 이 이야기들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신문에서, TV에서, 서점에서 접하고 그녀와 그녀 형제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러고는 그들의 일상을 영위한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여기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찰리 매콜리가 중심인 듯도 하다. 그는 여러 일화에서 배경이 되고, 조연이 되고, 또 주연이 된다. 뚱뚱한 패티라 놀림받는 고등학교 진학담당교사 패티의 언니 메릴린의 남편.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남자. 여러 여인들에게 사랑받는 남자. 그는 ‘엄지 치기 이론’을 이야기한다. 실수로 망치를 엄지를 내려칠 때 그 순간에는 괜찮다고 여겨지지만 조금 뒤에는 엄청난 고통이 온다는. 그는 그 고통의 순간을 기다린다. 사랑했지만 염치없게 돈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결국은 돈을 줘버리는 남자. 그리고 이혼.
루시 바턴은 어떤가? 탈출(그렇다 탈출이었다)한 마을을 수십 년 만에 돌아와서는 돌아온 것을, 그리고 결국엔 떠난 것을 잘못했다고 고백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녀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나 『오, 윌리엄!』의 루시 바턴과는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거기서는 어린 시절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고, 그게 상처였지만 터뜨리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터뜨리고 만다. 오빠와 언니를 만나고는.
그녀의 사촌 도티와 에이블 블레인의 이야기도 역시 상처의 이야기다. 특히 루시 바턴처럼 에이블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을 은페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은폐한다고 없어지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니다. 그 상처는 아물었지만 몸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았고, 그 흔적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억이 돋아난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불편한 것을 넘어선다.
제목으로 삼은 이야기의 맨 끝 문장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심장마비에서 살아나는 에이블의 이야기지만, 그 앞에 덧붙인 말이 “누구에게나”이듯 그 혼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이 말이 의미심장한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다 지긋한 나이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평생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났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혹은 거부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희망이 남는 건, 바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