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삶에 대한 되살릴 수 없는 익숙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버지스 형제』

by ENA

『버지스 형제』는 순서로 보면 『다시, 올리브』의 앞에 온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들을 보면 시간의 순서가 있긴 하지만, 그 순서라는 게 서로 얽혀 있어 뒤의 내용을 안다해도 앞의 내용을 읽는 데 큰 문제가 있지는 않다. 조금의 힌트만을 가질 뿐. 이번의 경우도 『다시, 올리브』에서 만났던 버지스 형제의 이야기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이상 그들의 나중 삶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것은 조금은 안심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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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작품 『에이미와 이저벨』의 배경이 되는 메인 주 셜리폴스와 뉴욕시가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어쩌면 나이 든 에이미와 이저벨(어쩌면 아닐 수도),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 형식으로, 그들이 아는 어떤 형제의 이야기다. 짐이 있고, 네 살 터울의 쌍둥이 남매 밥과 수전이 있다. 각각 여덟 살, 네 살 때 누군가의 잘못으로 아버지는 죽었다. 그 사건으로 모두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크게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든,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되었든, 그리고 셜리폴스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이혼 후 아들 하나를 키우고 살든. 그래서 소설은 가족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관한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은 수전의 하나뿐인 아들, 잭이 소말리족의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돼지머리를 던져 넣은 사건이다. 그래서 소설은 사회의 인종과 종교의 갈등, 그리고 관용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 볼 인물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아들일 잃은 후 간신히 빠져나온 압디카림이다. 결국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알량한 자비가 아니라 소말리족에서 내민 화해의 손길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소말리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한 부분이다.


다시 가족 이야기로 가보자. 어찌 되었든 이 소설의 중심은 짐과 그의 아내 헬렌, 밥과 그의 전처 팸, 그리고 수전과 그의 아들 잭이니까. 스트라우트가 자주 다루지만 부부 사이의 믿음과 갈등은 참 미국적이다. 그들은 헤어지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만나서 조언을 주고 받고, 또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허망한 탑을 쌓아가고 있기도 하다. 소말리족 압디카림의 아내가 말한 자기 자식들이 “권리의식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게 스트라우트의 마음 속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 미국의 가족 이야기를 쓰지만, 거기에 소말리족을 넣은 이유가 단순히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처럼.


버지스의 세 남매는 계속해서 위기에 처한다. 수전이 휘청거리는 동안, 마치 위기에 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짐도 밥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이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 사람의 위기는 다른 형제에게도 자신의 위기를 깨우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짐이 밥에게 오십 년 전의 사건을 실토하는 것도 잭으로 인한 수전의 위기 때문이 아닌가?


인물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되내인다. 그들이 어떻게 지냈었는지... 후회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혹은 이해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현재를 깨닫는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부정이기도 하다. 적어도 버지스 형제들에게는 그렇다. 그 과거를 공유하는 한 그들은 끊어질 수가 없다. 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나간 삶에 대한 되살릴 수 없는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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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표현해 내는 한 사람 하나 사람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에 감탄했다. 이제 (아마도) 그녀의 (번역된) 작품을 모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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