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만나는 뜻밖의 역사와 그림

김선지, 『뜻밖의 미술관』

by ENA

표지부터 보자. 이 인상적인(?) 표지의 그림은 캉탱 마시라고 하는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가 그린 <추한 공작부인>이다. “늙은 여자”라고도 불리는 그림이니 분명 여성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추하다’. 이런 걸 왜 그렸을까? 사실 이 비슷한 그림을 남긴 화가가 또 있다. 바로 천재 중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다 빈치의 그림은 <그로테스크한 머리>란 제목으로 스케치화다. 다 빈치가 캉탱 마시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20세기 들면서는 이렇게 추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없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것을 그린 그림과 조각상이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간 가고일(gargoyle)이랄 수도 있는 추한 모습의 인물이 흥미와 관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고, 그런 이들을 그린 그림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즐겨 그렸던 캉탱 마시라는 화가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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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의 『뜻밖의 미술관』은 이처럼 그림을 통해서 그림이 나온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거나, 혹은 잘못 알려진 역사를 이야기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을 통해서는 잘못 알려진 예수의 모습을 폭로(!)하며, 외모지상주의, 혹은 외모의 서구적 기준을 비판한다. 하얀 대리석으로 남은 고대의 조각상이 원래는 화려하게 채색되었던 것을 이야기하면서는(“역사상 가장 놀라운 거짓말”)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욕망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조각이나 건물의 ‘황금비’ 역시 실제로는 거의 존재하는 않는 신화, 아니 거짓말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존 콜리어의 <고다이바 부인>이라는 그림을 두고는 고다이바 부인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인하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나체로 마을을 돈 이야기)를 통해서는 기존에 알려진 순수함과 미덕을 상징하는 고다이바 부인이라는 상징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이 신화를 우리가 깨뜨려야만 하는 신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투영시킨, 상상력이 반들어낸 ‘아름다운 신화’라는 점이 앞의 것과는 좀 다르다.


그밖에도 대(大)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들을 통해서는 중세의 역동적인 모습을,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통해서는 르네상스가 실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인류 역사에 유구하게 흐르는 본능적인 욕망) 찾아내고 있으며, <헨리 8세의 초상화>와 엘리자베스 1세의 여러 초상화를 통해서는 역사 속의 프로파간다를 섬세하게 파악해낸다. 자신의 가학적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주세페 데 리베라의 그림도 있으며, 신화와 역사 속의 그림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격렬하게 표현해낸 프란시스코 고야도 소개한다.


천재 중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또 다른 얼굴을 포착한 글에서는, 그의 어둡고 추한 것에의 탐닉(<추한 공작부인>의 모사에서도 보듯이)을 폭로하고 있으며, 여성의 몸을 남성처럼 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정신 세계도 탐구하고 있다. 가장 독창적인 그림을 남긴 헤이로니무스 보스에 대해서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 그림에서 한 장면 한 장면 찾아가는 재미가 있고, 조르조네나 젠틸레스키와 같은 잊혀졌었거나 저평가되는 화가들을 새로이 알게 된 데에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이는 또한 여러 여성 화가를 소개하는 데로 이어지는데 마담 르브룅이라든가, 메리 베스 에델슨가 그들이다. 그리고 고갱에 대한 재평가도 하고 있는데, ‘고루한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화려하고 대담한 색체를 사용하여 새로운 회화를 창조한’ 데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끝판왕으로, 성 착취에 골몰했던 그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의 그림을 아무런 감정 없이 감상할 수 없게 한다.


제목이 ‘뜻밖의 미술관’이다. 제목대로 뜻밖의 역사를 알게 된 것도 많았고, 뜻밖의 화가의 삶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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