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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30. 2023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막아라!

샘 킨, 『원자 스파이』

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원자폭탄에 관한 얘기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이뤄진 맨해튼 계획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야기는 오펜하이머의 생애에 관한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상세히 다뤄지고 있으며(https://blog.yes24.com/document/8271623), 최근엔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봉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폭탄에 관한 얘기는 거의 다 미국이 개발한 것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다.


물리학자 실바르드가 아인슈타인을 거쳐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해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한 것은 독일이 먼저 그 무시무시한 무기를 개발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양자역학이 꽃을 피운 것도, 핵분열을 처음 발견하고 발표한 것이 독일의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였을 만큼 독일의 물리학의 수준은 세계 최고였다.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덤벼들기만 하면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와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물리학자가 원자폭탄을 실제로 개발하려 했는지, 개발하려 했다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한다. 특히 하이젠베르크는 어떤 태도였는지에 대해서 더욱 그렇다. (나치에 대해서는 아닐지라도) 독일에 대해서는 깊은 충성심을 가진 하이젠베르크가 적극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다고도 하고, 나치에 반발하여 태업 수준으로 임했다고도 하고, 나치가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도 하고,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그만한 실력을 가지지 않았다고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하이젠베르크는 의심은 가지만, 확증은 없는 상태에서 풀려났고, 양자물리학자로서 명예를 누리며, 『부분과 전체』라는 명저를 남기기도 했다.


샘 킨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원자폭탄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 다르게 전한다. 미국의 맨해튼 계획이 아니라, 바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에 관한 이야기. 아니, 그 개발 계획을 방해하고 무산시키기 위한 미국 스파이 부대의 이야기다. 물론 처음 듣는 이야기다.

 



미국 CIA의 전신이라 일컬어지는 OSS는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막기 위해 전직 메이저리그 포수, 네덜란드 출신으로 소외받는 물리학자, 러시아 출신으로 백군으로 적군과 맞섰던 이력이 있던 고등학교 체육팀 코치 출신의 호전적 대령 등 다양한 인적 구성을 갖춘, 이른바 과학특공대, ’알소스 부대‘를 만든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특별 부대로 ’개망나니‘ 부대로 불릴 정도로 좌충우돌의 활동을 한다. 샘 킨은 바로 이 부대의 인물들과 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과 관련한 또 다른, 그러나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모 버그다.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이자, 프린스턴을 다녔고, 10여 개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하고(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일본어를 익힐 정도), 어떤 이들과도 단 몇 분만에 친해질 정도로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직접 OSS에 접촉했고, 결국 알소스 부대에 들어갔다. 하이젠베르크의 암살 임무를 맡고, 중립국이던 스위스의 취리히에 잠입해 하이젠베르크를 암살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가졌지만 결국은 실행하지 못했다(이 대목들에서 샘 킨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다. 다만 하이젠베르크의 것이 아니라 모 버그의 것으로). ’원자 스파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어느 한 사람을 지목한다면 바로 모 버그인데, 그만큼 이 이야기에서 중심이 되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양자스핀을 발견해서 수십 차례나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받지 못했고, 결국은 잊혀진 과학자가 된 새뮤얼 가우드스밋의 삶도 흥미롭다. 흥미롭다기보다는 조금은 애잔한데, 그가 알소스 부대에 영입된 이유가 맨해큰 계획을 모르는 거의 유일한 미국 내 물리학자였다는 사정은 더욱 그런 애잔한 느낌을 더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친구로 네덜란드에 두고 온 부모를 걱정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은 형식적인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못한 (그보다 훨씬 명성이 높은) 하이젠베르크를 심문하는 상황은 아이러니까지 하다.


이 이야기에 조 케네디 주니어가 언급되는 것은 어쩌면 이질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바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케네디, 존 F. 케네디, JFK의 형. 당시 미국의 권력층에 위치했던 아버지 조 케네디 시니어가 대통령으로 키우고자 했던 인물은 존이 아니라 큰 아들 조였다. 그가 2차 세계대전 때 비행사로 참전했다 사망해서 존이 그 대타로 정치권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샘 킨은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과 관련해서 그 이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조 케네디 주니어가 그날 출격한 이유에 대해 미스터리한 면이 많다는 얘기가 많았는데(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고, 출격 순선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샘 킨은 조가 (전쟁 영웅이 된) 존에 대한 경쟁심으로 무공을 세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으로, 그래서 그런 무모한 계획(이른바 모루 작전이라는 것인데, 바로 원자폭탄을 탑재할 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미사일 V-3 발사용 벙커를 파괴하고자 하는 작전)에 자원해서 나섰던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밖에도 많은, 모순적이면서도 매력적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했고(특히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가 그렇다. 그는 마리 퀴리의 사위이자 이렌 퀴리의 남편으로 이렌과 노벨상을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다), 논란도 있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샘 킨은 과학계의 이야기꾼답게 이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게 그려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의 이야기면서, 역사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숨 막히는 첩보 소설로도 충분하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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