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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17. 2023

생명과학을 역사의 맥락 속에서

전주홍,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언뜻 상당히 신선한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그래,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라는 책이 있었다. 장홍제 교수의 책으로, 읽은 책이다(전주홍 교수의 책도 몇 권 읽어봤던 터이다). 뒷날개를 보니, 이 책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모두 우리나라 저자의 책이다. 나름 의미 있는 기획이라 생각한다. 또 내가 읽어본 장홍제 교수의 화학과 이번 전주홍 교수의 생명과학은 기획에 걸맞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물론 이번 전주홍 교수의 책은 장홍제 교수의 책과는 다른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긴 하다). 





제목 그대로 역사의 맥락 속에서 생명과학, 사실 더 정확하게는 생의학의 발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에 두 가지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에 뿌리를 둔 의학의 전통이고, 또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된 자연사의 전통이다. 처음 듣는 것이긴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구분이다. 이 가운데 이 책은 앞의 것, 즉 의학적 전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소는 겸손하게, 저자가 모든 분야를 아우를 만큼의 앎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게 겸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 특히 인문학과 관련되어 저자의 앎의 폭과 깊이가 있다.


그렇게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에서 비롯한 의학적 전통과 맞닿아 있는 생명과학, 생의학의 주제 중 저자가 뽑은 것은, 출산, 유전, 마음, 질병, 장기, 감염, 통증, 소화, 노화, 실험, 이렇게 열 가지다.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아프고, 늙어가는 과정들에 대한 과학인 셈이다. 끝의 ‘실험’은 저자가 전에 냈던 책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등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의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주홍 교수는 이 내용들을 차분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전달하면서, 몇 가지 강조하는 게 있다. 한 가지는 연구들의 연속적 맥락이다. 갑자기 나타난 연구는 거의 없다. 앞선 세대의 연구를 계승하거나 비판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새로운 의미의, 새로운 응용의 연구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좀처럼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관점을 갖지 않으면, 연구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인문학의 관점이다. 과학자는 과학만, 즉, 실험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 주제를 선택하고, 연구의 과정을 계획하고, 연구 결과를 해석하고, 그리고 응용 분야를 설정할 때, 모두 인문학적 맥락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런 인문학적 깊이를 가지지 않은 과학자들도 많고, 또 훌륭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도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인문학적 관점에서 과학을 해석할 수 있는 과학자가 없다고 한다면, 과학의 의미는 무척이나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으로 형해화될 것이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는 그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책의 앞 부분에는 각 장을 대표할 만한 그림을 하나(혹은 두 개) 보여주고 있고, 각 장에서도 내용을 보완하거나, 잘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을 적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이 역시 과학이 각 시대에서 그림이라는 예술의 맥락, 나아가 인문학적 맥락을 가지고 존재하고, 향유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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