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제목은 “배심원단”인데(원제는 <단죄의 신>), 미키 할러 시리즈 중 배심원에 관해서는 가장 적게 나오는 소설일 듯하다. 다른 소설에서는 배심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몇 사람에 관해 어떤 이유로 선호하고, 어떤 이유로 배제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설명으로 소설에서 미키 할러가 어떤 전략으로 재판에 임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배심원단을 선정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고, 배심원 중에는 단 한 사람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여러 차례 ‘단죄의 신’이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변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배심원단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척 신경 쓰고 있다. 자신의 의뢰인이 기소된 죄목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무죄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의뢰인이 무죄라는 것이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의 소설에서는 의뢰인이 유죄, 무죄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어떻게든 논리를 세워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당전문 변호사, 속물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소설에서는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미키 할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지난 소설 말미에 언급했던 대로 지방검찰청장에 입후보했지만, 초반 기세와는 달리 낙선했고, 자신이 변호해서 빼낸 음주운전자가 다시 음주 운전으로 무고한 모녀를 치어 죽였다. 그래서 가까워지던 전처와 딸과는 아예 척을 지게 되었고, 죄책감으로 괴롭다. 미키 할러는 위기였다.
그래서 의뢰인이 무죄라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인터넷 포주로 떳떳한 직업을 가진 이는 아니지만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사건을 캐면 캘수록 자신이 8년 전에 관여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사건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조종했다고 생각했지만(역시 윤리적으로는 떳떳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자신은 완전히 졸(卒)이었다. 자신의 의뢰인이자, 감정적으로 좋아했던 콜걸은 그 사건 이후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결국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관련한 8년 전의 사건이 이번사건의 키였다.
물론 미키 할러는 승리한다. 그렇지만 그의 미키 할러 시리즈가 그렇듯 완벽한 승리는 아니다. 극적인 반전은 파국으로 이어진다. 소설에서 재미있는 것은 미키 할러의 순간순간의 대처 능력이다. 마치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묻게 된다. 모든 것이 옳거나, 또 승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미키 할러는 진실, 아니면 승리의 길로 접어든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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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머리에서는 씽긋 미소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 잘 알려진 사실이다(후속편이 나왔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소설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모방이야말로 최고의 극찬이라더니, 그래서일까, 영화가 나온 뒤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속출했고, 링컨 차가 LA 법원 밖 도로를 가득 메우는 일이 허다해졌다. 자기가 영화의 실제 모델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변화가 많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 링컨 차인 줄 알고 탔는데 남의 차였던 적이 지난달만 해도 세 번이나 됐다.”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