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우선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몇 가지 상징적인 일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2005년 ‘정화의 서양 진출(또는 정화의 남해 원정)’ 600주년을 기념하여 7월 11일을 ‘항해일’로 지정한 일이다. 또 하나는 2013년 11월 동중국해 상공을 일방적으로 방공식별지역으로 설정한 일이다. 그밖에 ‘일대일로’라는 대외정책을 언급하고 있으며, 옮긴이는 ‘동북공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계다.
질문은 이런 거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바탕이 되는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 좀 더 간단한 말로 하자면, 중국은 왜 이러는 건가?
중국 명 제국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온 단조 히로시는 이 질문에 중국사를 관통하고 있는 의식 구조를 천조(天朝)와 천하(天下)라는 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 하에 화(華)와 이(夷)이 구분과 통합이 번갈아가며 나타난 것이 중국 역사이며, 이런 흐름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개념적으로 천조와 천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조는 천자(天子), 즉 하늘의 자식이 통치하는 조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천하는 천조 혹은 천자가 통치하는 공간을 말한다. 여기서 천자란 하늘의 위임을 받아서 천하를 통치하는 이를 가리키는데, 이는 황제와 겹치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왕조는 이를 통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천하의 개념도 이중적이다. 천자의 덕이 미치는 공간이 천하인데, 좁은 의미에서는 중국 왕조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넓게 봐서는 중국 왕조와 주변의 여러 국가 및 민족을 모두 포함하는 범위이다. 여기서 화(華)와 이(夷)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족을 화, 그밖의 민족을 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한족이라는 개념부터 애매하기 때문에 이런 구분 자체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 개념 아래 단조 히로시는 춘추 전국시대부터 청, 그리고 이후의 중화민국, 현대의 중국에 이르기까지를 분석하고 있다. 많은 국가, 혹은 세력으로 분열되었던 시대를 제외하자면 진?한, 수?당, 송, 요, 금, 원, 명, 청 등으로 중국(이 명칭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지만, 어째든 그 지역과 그 지역의 국가를 통합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의 국가는 교체되어 왔다. 이 중에 우리가 진짜 한족이의 국가라고 보는 것은 한, 당, 송, 명 정도인데, 이 책에서는 당 역시 선비족의 국가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순수한 한족이 중국 전역을 지배했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한족은 문화적으로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중국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족이 아닌 거란, 몽골, 여진 등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이후에도 화와 이의 문제, 즉 이를 통합해야 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어느 시기에는 화와 이를 뚜렷하게 구분했던 시기도 있고, 또 이를 통합하고자 애를 썼던 시기도 있다. 외이(外夷)가 지배했던 시기 중에는 화의 개념을 넓게 해석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이 와중에 중국 대륙 자체에 포함되지 않았던 주변 국가와 관계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저자는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베트남 등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서 중국이 이들 국가, 혹은 지역에 어떤 태도를 지녔는지, 그리고 또한 이들 지역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국가들이 중국과는 완전히 독립된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느니, 혹은 완전히 속국이니 하는 극단적인 해석은 없다. 다만 일본의 경우, 지역적인 상황으로 보다 헐거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언급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본도 중국의 천하의 개념, 화이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 역시 저자의 시각이다.
중국사를 이렇게 지배 민족의 교체를 시대 상황이나 인물 중심이 아니라 교체를 전제로 한 후, 그 교체에 따른 관념의 유지와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고 있다. 흥미로울 뿐 아니라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도, 그리고 중국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에 대한 태도, 세계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