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이들이다. 한 사람은 눈 먼 프랑스 소녀, 또 한 사람은 독일의 고아 소년. 이야기는 한 장면, 한 장면, 영화의 신(scene)처럼 짧게 짧게 처리되고, 그 토막 난 것 같은 이야기의 연속된 흐름에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간다.
1권에서 과거와 현재(1944년 8월)를 오가며 소녀와 소년의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신산한 삶이었다. 결코 축복받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들은 열심히 살아갔다. 2권에서 그들은 같은 도시에 있다. 생말로. 연합군이 탈환하기 위해 포격을 가하고 있는 도시. 그 도시에 단 한 집만 포격을 피한다.
그 집에는 마리로르와 그녀의 작은할아버지가 산다. 그들은 밤마다 라디오로 소소한 소식을 띄우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숫자를 부르고, 음악을 튼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합군은 그 집을 포격하지 않는다. 또 그 이유 때문에, 군인이 된 독일 고아 소년 베르너는 생말로까지 들어왔다. 라디오로 송신하는 지하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그러나 소년은 그러지 못한다. 더 어릴 적 여동생과 듣던 바로 그 목소리, 그 음악의 진원지가 바로 거기였다. 소녀를 본다. 더더욱 그럴 수 없다.
1권 말에 등장한 룸펠도 소녀와 할아버지에게 더 접근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목적이 된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를 찾기 위해서다. 다른 것들이 모조품이니 진품은 바로 박물관의 열쇠장이 마리로르의 아버지가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는 그곳을 뒤져야 한다.
그는 집을 뒤진다. 소녀는 비밀 장소인 다락방에 숨어 닷새를 버틴다. 다이아몬드는 아버지가 만든 모형 집 안에 숨겨져 있고, 집 모형은 바로 소녀의 호주머니에 있다.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보낸 편지에 그걸 암시해 놓았었다. 소녀를 구한 건 소년이다. 그리고 단 하루 함께 보낸다. 그리고 소녀를 안전하게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한 후, 자신은 포로가 되고, 사살당한다.
1975년이 된다. 살아남은 인물들이 있다. 고아 소년 베르너의 상사였던, 거구의 폴크하이머는 옥상 텔레비전 안테나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베르너의 동생 유타는 결혼을 하고,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되어 있다. 늦둥이 아들을 키운다. 장님 소녀 마리로르는 르블랑 박사가 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의 작은 실험실을 운영한다. 그들은 다시 엮인다. 베르너의 유품이 폴크하이머에게로, 폴크하이머에게서 유타에게로, 다시 마리로르에게 전달된다. 모형 집이다. 아직 아무도 그걸 열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마리로르가 연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참혹한 전쟁 속, 소년과 소녀의 감동스런 이야기. 이렇게만 말할 수 없다. 그 참혹함을 대하는 인물들의 처연함이라니.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