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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1. 2023

감각과 의식에 관하여

니컬러스 험프리, 『센티언스』

‘Sentience’. 우리말로 쉽게 번역하면, ‘지각’, ‘지각력’, ‘감각성’ 등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이 말을 좀 더 서술적으로 들여다보면, ”쾌락이나 고통과 같은, 어떤 느낌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식(awareness)’와 ‘인지능력(cognitive ability)’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학술적인 용어로, 그냥 우리가 일반적인 대화에서 사용되는 것과는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말들이지만, 어쨌든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니컬러스 험프리가 『센티언스』에서 사용한 용어를 살펴보자. 험프리는 ‘지각 있는(sentient)’(당연히 ‘지각(sentience)’를 의미한다)을 처음에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물, 인간이든 아니든 감각자극에 반응하는 생명체를 뜻하는 형용사’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경험의 내적 퀄리아, 즉 감각이 주는 느낌’을 의미한다고 했다.

‘의식(consiousness)’에 관해서는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라고 바꿔 말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쪽 분야의 엄격한 용어인 모양이다. 그는 의식이란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나 더 알아둬야 할 말이 있다. 바로 ‘퀄리아’라고 하는 용어다. 여든이 넘은, 세계적인 심리학자 니컬러스 험프리의 가장 중심되는 개념 중 하나로, ‘감각질’로도 번역되는 용어다. 퀄리아를 또 다른 말로 하자면 ‘현상적 속성(phenomenal quality)’라고도 할 수 있는데, 험프리는 이를 “벌에 소여서 아파하는 그 어떤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용어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대신에 “자기 자신이라는 그 어떤 것, 그런 비슷한 것의 도움으로 퀄리아를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만 생물체는 비로소 지각할 수 있다고 규정된다”고 보충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느낌의 바탕이랄까? 




아무튼 이런 용어를 기본으로 해서 험프리는 자신이 평생 일구어온 이론을 조금씩 펼쳐놓는다. 그런데 쉽지 않다. 특히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의식에 관한 철학적, 인지적 논점을 다루고 있어서 더더욱 쉽지 않다. 다만 앞부분의 자신의 초창기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적 의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만 가지고도 이 책이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맹시(盲視)’에 관한 이야기다. 1966년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헬렌이라는 원숭이에 관한 연구에서 비롯된 맹시에 관한 연구는, 단지 그런 현상이 있다는 흥밋거리를 넘어서 감각과 인지에 관해 보다 넓고, 깊은 논의로 이어졌다. 즉, 시각피질을 제거당한 헬렌이, 볼 수 없음에도 시각적으로 현저한 물체의 공간 위치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혼자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각이 좋아지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다만 그것은 원숭이 헬렌이 “자신이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편안할 때만” 그랬다.


맹시에 관한 연구는 사람에게로 확장하게 되는데, 이런 맹시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험프리는 감각과 인식의 관계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통은 감각이 있고,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의식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맹시는 의식적이 감각이 없이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감각이 결여된 상태의 순수한 인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상적 의식이 먼저 생겼고, 그 후에 감각이 생겼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솔직하게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밖에도 원숭이가 빨간 빛과 파란 빛을 선호하는 현상에 대한 오해와 이어진 제대로 된 이해도 무척 흥미롭다. 즉, 원숭이가 빨간 빛보다 파란 빛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을 보고, 그것 자체를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다른 이유, 즉 진화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하늘빛과 안심해도 되는 하늘빛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험프리는 “나는 과학적으로 더 발전했다”고 쓰고 있는데, 자신의 잘못된 추론을 솔직하게 인정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자신의 젊었을 때의 연구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와 연구 과정이 이 책의 핵심은 아니다. 진화와 현상적 의식 사이의 관계, 동물의 의식에 관한 논의, 나아가 로봇의 의식에 관한 논의까지 이른다. 개나 까마귀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그렇다면 문어는 어떤지 등에 논의는, 비록 쉽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한번은 생각해 봤음직한 것들이다.


“어려운 문제”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 어려운 문제들을 간결하게 다룬 솜씨는 50년 넘게 한 분야를 연구해왔고, 또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알려왔던 한 연구자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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